[뉴스토마토 김진양·구태우 기자]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 8000여명을 직접고용한다. 삼성이 80년간 고수해 온 '무노조 경영'은 사실상 폐기됐다.
17일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합의 과정을 거쳐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고용하는 한편, 이들의 합법적 노조 활동도 보장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규직 전환 규모는 90여개 협력사 80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17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 직접 고용에 합의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병훈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장, 곽형수 수석부지회장, 나두식 지회장, 최우수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최평석 전무. 사진/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 및 이해당사자들과 빠른 시일 내에 직접고용에 따른 세부 내용에 대한 협의에 착수한다. 노사간 갈등 관계를 해소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한 노력을 강화한다. 아울러 이번 조치로 현재 운영 중인 협력사와의 서비스 위탁계약 해지가 불가피해진 만큼 협력사 대표들에 대한 보상 방안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협력사 직원들이 삼성전자서비스에 직접고용될 경우 고용의 질이 개선될 것"이라며 "서비스의 질 향상을 통한 고객만족도 제고는 물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성명을 통해 환영 입장을 표명함과 동시에 "삼성에서 노조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삼성의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소속 수리기사가 직접고용되면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삼성에 민주노총 노조는 지난 2011년 처음으로 설립됐다. 에버랜드에 삼성지회가 생긴 뒤 2017년 삼성웰스토리지회가 생겼다. 정권교체 분위기를 타고 삼성에스원 노조도 설립됐다. 협력업체 소속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설립됐지만 하청업체의 한계로 삼성과 직접 교섭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삼성의 노조 사찰 문건이 재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됐고 협력업체 소속 800여명의 노조 조합원은 삼성 계열사 소속이 됐다. 삼성은 노사협의회 중심으로 운영됐던 노무관리를 노사관계 중심으로 바꿔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배경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정규직 전환 요청이 꾸준히 있어왔고, 오늘 전격적으로 합의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계열사 단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다수의 시각이다. 지난주 순환출자고리 해소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데 이어 노조 문제에도 전향적으로 나서는 등 삼성을 둘러싼 이슈들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설명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앞으로 저희 사업장 외에 협력사까지도 작업환경이나 사업환경을 챙기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의 노사관계 재정립의 분수령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사가 치르게 될 첫 임단협이다. 노조는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기 위해 임단협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임단협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노조 조합원도 이전보다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김진양·구태우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