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제적 '핵동결' 선언…보다 치열해야 할 우리의 준비

남북정상 신뢰 형성과 빈틈없는 국제협력…개성공단 등 경협 재개 준비도 시급

입력 : 2018-04-22 오후 12:48:07
[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를 선언하는 등 사실상 ‘핵동결’을 발표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북한의 이러한 선제 조치는 앞으로 이어질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전향적 각오에 호응해 핵동결을 넘은 핵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남북 공동번영 등을 목표로 보다 치열하고 발빠른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20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주요 내용은 ▲21일부터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 ▲북부 핵실험장 폐기 ▲핵무기·핵기술 이전 금지 ▲국제사회와의 적극 대화 ▲경제건설 총집중 등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3월 발표한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5년 만에 종료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새 노선으로 제시했다. 그는 “병진노선의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되었다”며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북한의 이러한 발표는 대내적으로는 ‘우리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설명으로,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대외적으로는 ‘조건 없는 선제 핵동결’을 행동으로 보여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지 말라’고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주요 관심사가 경제발전과 국제사회 복귀에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해 한반도 공동번영을 추구하고, 국제사회 복귀를 도와 자연스레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을 달성하는 방향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의 비핵화 ‘타임라인’을 고려해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
 
우선 협상의 입구인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정상 간 신뢰구축이 최우선돼야 한다. 이는 향후 이어질 각종 회담들의 성과도출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설령 북미 정상회담이 큰 성과없이 끝나더라도 미래를 기약하기 위한 최소한의 담보가 될 수 있다. 회담 의제도 한반도 비핵화나 경제지원과 같이 국제사회의 참여와 보장이 필요한 내용과 함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비경제적이고 두 정상의 결단 만으로 성사 가능한 한반도 내 주제를 다뤄야 한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는 좋은 합의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신이 더 깊어지고 오히려 후퇴돼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제는 정말 작은 합의라도 제대로 지켜지는 새로운 신뢰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간 직통전화 ‘핫라인’이 사상 최초로 지난 20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됐다. 사진/청와대
 
5월말 또는 6월초에 있을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남북회담에서 다루지 못한 체제보장과 실질적 비핵화와 같은 이슈들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해야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고 그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후 그 시나리오가 현실화 할 수 있도록 배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우리가 북한과 1의 노력을 한다면 미국과는 3의 노력을 한다”면서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했다.
 
남북과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국제사회의 승인과 보장이 필요하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북한에 안전 보장을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핵 포기에 따른 보상이 진행될 텐데 이는 한국, 중국, 일본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6자회담이 이뤄지면 북미 양자의 불신을 보완할 수 있다”며 “북미회담 결론이 나면 6자회담 시점이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과 기존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 북미 두 양자회담에서 일정 성과를 낸다면 실제 3자(남·북·미)회담에서 일종의 ‘종전선언’을 하고, 6·25 한국전쟁의 당사자인 4자(남·북·미·중)회담에서 지금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어 6자(남·북·미·중·러·일)회담에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구성 등으로 북한의 체제안정과 경제발전을 보장하고, 9월 유엔(UN) 총회에서 국제사회의 최종 승인을 받는 전략이 유력해 보인다.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문재인정부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지난 4월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국(안보리)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이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20개의 핵무기 폐기 문제도 일종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은 핵동결을 이야기했지만, 비핵화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고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비핵화에는 동결, 신고, 불능화, 검증, 폐기 등의 단계가 필요하며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공교롭게도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임기(2020년 11월)와 맞물린다. 즉 북한 비핵화를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연출할 개연성이 충분한 셈이다. 아울러 북한이 핵무기를 매개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질서에 재편입될 가능성이 있고, 국제사회가 북한판 ‘넌-루가법’(우크라이나식 핵폐기)으로 북한 경제를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러한 분위기 조성 또한 우리 정부의 몫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남북회담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장정의 시작”이라며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문재인정부가 평화 이니셔티브를 쥐고 창의적인 ‘문재인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무대에서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내기반 조성도 중요한 포인트다. 대표적으로 개성공단 문제가 있다. 박근혜정부가 2016년 2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문제삼아 개성공단을 사전 예고 없이 전면 중단하면서 개성공단 입주업체 관계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지금도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북미회담에서 의미있는 합의가 나온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 완화나 해제결의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개성공단 재가동도 가능하다. 당장이라도 개성공단을 가동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상처받은 개성공단 입주업체 관계자들을 다독이는 과정이 시급해 보인다. 이 외에도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고 상호 신뢰를 다질 수 있는 다양한 군사적·비군사적, 경제적·비경제적 교류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위원들이 지난2월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시설물 점검 위한 개성공단 방북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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