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지난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월12일 싱가포르’로 북미 정상회담 시간·장소를 발표했지만, 이후 양측이 격한 말을 주고받으며 한 때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2차 정상회담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미 실무회담이 진행 중”이라고 확인함으로써 혼란은 수습되는 모양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26일 기자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은 기존 병진노선을 제외하고 인민들에게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 핵을 없애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생존이 아닌 행복의 문제로, 그러려면 경제성장률이 연 4~5%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김 위원장에게 개혁·개방은 필수이며 비핵화는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두고는 “쇼가 맞다. 단, 눈속임을 위한 쇼가 아니라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이고 의미있는 쇼”라고 강조했다. 비핵화를 알리는 출발 신호로 이해해야지 기술적인 분석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향후 북미 간 합의 과정에서 기존 통용되던 핵폐기의 단계적 과정(유예, 폐쇄·봉인, 불능화, 폐기)이 섞일 수 있으며, 여기서 북한의 행동과 미국의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도 내놨다.
"김정은, 경제개발 5개년 전략 3년차인 올해가 중요"
북한은 지난 2016년 제7차 당 대회를 개최했다. 1980년 이후 36년 만의 당 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을 내놨다.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의 목표를 김 위원장은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놓고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올해가 5개년 전략의 3년차다. 기존 (핵·경제) 병진노선을 결속하고 경제에 매진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며 “트럼프에게는 (자신의 첫 임기 마지막 해인) 2020년이 중요하지만, 김정은에게는 올해가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북미 양측이 향후 입구(2018년)와 출구(2020년) 모두를 같이 그려놓는 합의가 있을 것이라고 김 교수가 예상하는 근거다.
그는 “김 위원장이 그리는 그림은 내부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개방으로 가야하며 그러려면 대외적인 지원이 없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북한 경제 규모가 작아서 개혁 만으로는 인민들이 원하는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북 제재조치가 해제 또는 완화가 되더라도 미국이 대규모 지원을 하기는 어렵다. 이 과정에서 코카콜라 등 민간 자본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뉴딜정책’ 하듯 도와줄 수는 없다. 결국 국제사회를 통해야 하고 그러면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을 해야 하는데 쉬울지 모르겠다. 지금 준비를 한다 해도 통상 2~3년이 걸린다. IMF 가입을 해야 세계은행(WB)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들어갈 수 있다. 위에 말한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의 3년차를 맞은 김정은은 이때까지 못기다린다.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 대북 제재가 유연화되면 미국의 묵인 하에 중국이 들어갈 수(대북교역에 나설 수 있는) 있는 공간이 생길 수 있다.”
미중 사이에 이같은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김 교수는 내다봤다. 이와 관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 다롄에서 김 위원장과 2차 북중 정상회담을 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뒤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발표가 이어진 가운데 미중 양국 간 관련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 사용하는 볼트·너트의 90%, 북한을 돌아다니는 모든 기차를 중국에서 만들고 있다”며 “동북3성 발전이 시급한 중국은 자신들의 물건을 팔 수 있어서, 북한은 개방을 통해 인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경제규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윈윈”이라고 했다.
북한 경제 확대가 중국을 제외한,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김 교수는 가능성을 낮게 봤다. 김 교수는 “우리 경제규모 자체가 작고 이른바 ‘남남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우리 내부적인 준비도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남북 경제교류·협력,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이것은 대북 제재문제와 연관되어 있기에 제재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며 “미국 측의 ‘대북제재 해제 전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말에 그냥 수긍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치고 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판문점 선언 1조 내용으로 비핵화가 아닌, 남북관계가 나오지 않았느냐”며 “스스로 ‘우리는 안 된다’는 식의 패배의식으로 가면 안 된다. 조금 더 담대하게 나가자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와 함께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지난 시기의 관성이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지금 고위직에 있는 분들 중 상당수는 보수정부 전 시기 근무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 분들이 6·15, 10·4 공동선언을 만들었을 때와 지금의 북한 상황은 다르다”고 말했다.
김동엽 교수는 지난 26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를 독립변수·상수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동엽 교수 제공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영변 냉각탑 폭파와 달라"
지난 24일 북한 당국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놓고 김 교수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는 “풍계리 폐기는 비핵화를 알리는 총성이며 그 이전에 유예 선언도 했다”며 “눈속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이고 의미있는 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기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북한도 취재진 외에) 기술자를 부르지 않은 것”이라며 “지금 ‘풍계리 갱도가 100미터 밖에 붕괴가 안됐으면 다시 쓸 수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언급했다.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와도 성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당시 냉각탑은 5메가와트(MW) 실험용 원자로의 일부였다”며 “일시적으로 원자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고 냉각수를 강물으로 돌려서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에는 풍계리 핵실험장 전체를 폐기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과 미국이 내놓고 있는 비핵화 방법론 상의 차이도 합의가 가능한 것으로 봤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도 “물리적으로 단계적(접근법)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중요한 건 북한의 비핵화 플랜과 미국이 내미는 보상이 모두 이행될 것이라는 신뢰성이다. 김 교수는 “미북 양국 서로를 이해시키고 신뢰할 수 있도록 보증인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라며 “판문점 선언 3조 4항 내용은 남북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비핵화를 위해 같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믿도록 해주겠다’는 말이 들어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과거 리비아·우크라이나 핵폐기 문제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다자 간 보장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오른쪽 첫 번째)가 지난해 8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한반도 정세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