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전세계 보건문제로 대두 중인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업계와 정부가 적극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항생제 신약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업계가 느끼는 개발 부담이 만만치 않은 만큼, 민간차원에 맡기지 말고 산업계와 정부의 적극적 협력이 시급하다는 제언이다.
30일 허경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서울 서초구 협회 사옥에서 열린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협력 현황' 세미나를 통해 "항생제 내성과 관련한 국제사회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역시 보다 공식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높아졌다"며 "항생제 신약 개발이 어려운 현실 속 산업계와 정부의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영국 정부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약 70만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하고 있다. 오는 2050년에는 1000만명까지 늘어나 치료비용만 100조달러(약 10경원)에 달할 전망이다.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꼽히는 미국 역시 지난 2014년 200만명 이상이 내성균에 감염돼 2만3000여명이 사망했다. 직접적 사망 인원만 집계된 만큼, 2차 감염 등에 의한 간접적 사망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는 더욱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항생제 내성 문제가 이번에 처음 불거진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199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항생제가 없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으며, 현실화될 경우 사소한 감염이나 작은 상처에도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미 1970년대 항생제 연구건수가 정점을 찍은 데다 다양한 항생제들이 시장에 존재했던 만큼 당시 각 국가와 업계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생제 문제를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진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16년 영국정부 보고서와 지난 세계제약협회연맹(IFPMA) 이사회, 국제연합(UN) 등에서 항생제 내성 이슈에 대한 논의가 심도있게 다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내성균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약 개발 필요성이 재차 부상했다.
다만 항생제 신약 개발에는 각종 제약이 따른다. 신약개발을 위해 내성균 감염환자를 임상환자로 써야하지만, 표적 내성균 감염환자를 확보하기 어렵고, 대조약물이 없는 내성균 감염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어렵게 시판이 가능해져도 낮은 보험약가 책정 탓에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점도 국내외 제약사들의 적극적 개발을 가로막는 요소다. 다른 의약품에 비해 원가도 높고 개발비용 역시 많이 투입되지만 약가가 턱없이 낮아 제약사 입장에선 '팔아도 손해'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인 동아에스티가 개발한 슈퍼 항생제 '시벡스트로(성분명: 테디졸리드)'가 지난 2015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시판되지 않고 있는 점도 같은 이유다. 시벡스트로는 2015년 12월 주사제, 이듬해 1월 정제의 보험약가를 부여받았지만 미국 내 약가의 3분의1 수준이라 국내 출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15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가 집계한 76개국 가운데 17위에 해당하는 항생제 소비국이지만 일부 특화된 제약사들 외에 항생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곳이 턱없이 적은 이유도 이 같은 배경에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정부 역시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을 기점으로 항생제 사용량 변화에 대한 비교 연구를 진행하고, 2016년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발표하는 등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신약 개발을 위한 구체적 지원이나 협업은 부족하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임원빈 동아에스티 의약화학연구실장(상무)는 "항생제는 민간이 아닌 국가차원의 개발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유럽의 경우 관련 법안을 마련해 신약 허가 심사기간을 줄이거나 특허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지원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국내 역시 구체적인 민관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일 허경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협회 사옥에서 열린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협력 현황' 세미나를 통해 "항생제 신약 개발이 어려운 현실 속 산업계와 정부의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