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이 보이지 않는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나는 무역을 둘러싸고 양국 간 직접 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북핵을 둘러싼 간접 경쟁이다. 두 차례 진행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 담판은 지난달 29일 백안관의 고율 강세 강행 방침과 중국 상무부의 심야 성명으로 재 점화됐다. 2일과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무역협상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북핵을 둘러싼 문제에서도 중국은 한반도 문제 ‘당사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종전선언이나 평화체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역 분쟁이든 한반도 비핵화 관련 프로세스든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전면에 부상하지 못하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4자 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의 내용이 들어갔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올수록 남북미중의 회담 개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국이고 특히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조인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언급하면서도 중국의 참여 가능성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여전히 시진핑 주석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협상 과정에서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 준비과정 그리고 정상회담 이후 진행될 일련의 변화 과정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와도 관련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을 자아내게 한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계속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국이고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이라고 계속 강조하는 이유다. 정세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중국도 해당 문제의 주요 당사자라고 생각하는데 드러내놓고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중국이 처한 고민이다. 북한과 미국의 양자 대화는 그동안 중국이 줄기차게 강조해왔던 당사자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한 정치적 해결의 길에서 나온 결과다. 북한과 미국의 양자 대화는 중국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실제로 이루어지면서 중국이 의도하지 않은 이른바 차이나 패싱을 불어오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북핵 문제의 해결을 주장해왔다. 이는 북핵 문제의 소재가 결국 미국과 북한의 오랜 불신에 기초한 문제로 출발했다는 인식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이 마주 앉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중국의 주장은 일관적이었다. 북한과 미국이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그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 과정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게 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중국의 기대가 오히려 중국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매우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갖춘 지도자들의 개인적 속성은 협상 과정에 깊게 드리워져 있다. 기존 규칙에 따른 예측 가능한 대화와 협상은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칙적인 협상이 전체 협상 과정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중국의 협상은 매우 정교한 그러나 예측 가능한 협상 전략을 보였다. 그래서 두 차례에 걸친 미중 무역협상을 통해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한 순간 바로 미국에서 고율 관세를 재부과하겠다는 정책 전환을 중국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지난달 24일 갑자기 순항하던 북미 회담을 취소한다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전략도 마찬가지다. 이를 받아 바로 북한과 미국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북한의 담화도 같은 맥락이다. 변화무쌍하며 예측 불가능한 협상 국면은 중국에게는 매우 이례적이고 종래 겪어보지 못한 현상이다. 중국 정치 변화가 지속과 변화, 계승과 발전이라는 매우 관성화된 패턴에 지배받아왔다는 역사적 경험과 관련 있다. 중국은 정치발전과 제도화 측면에서 특히 개혁개방 이후 예측 가능한 정치를 지향해 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김정은의 북미 회담 협상 과정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협상 과정에 녹여낼 정도로 불가측성이 높은 협상 과정이었다. 중국은 이러한 협상 관성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 북미 간에 벌어지는 게임이 생경하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미 양자 회담을 통한 정치적 해결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북미 양자 회담을 통한 협상이 진척될수록 차이나 패싱 논란은 계속 확대 재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예측 불가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도 점차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도 협상 과정에 중요한 협상 전략임을 북미 간 협상 과정에서 배워나가야 한다. 적어도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하려면 북미 간 회담 협상 과정에서 관성에 반하는 예측 불가능한 협상도 새로운 협상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재인식하고 새로운 협상 전략을 재구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존 관행과 관례를 답습하는 협상 전략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이른바 정치적 해결이라는 애매모호한 수사로는 중국이 빠르게 변화하는 비핵화를 둘러싼 정국에서 계속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