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 통신사이며 언론사인 신화사(新華社)는 지난 2016년 7월 뉴스 보도에서 써서는 안 되는 금지어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언어 57개를 발표했다. 핵심은 공공의 통합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뉴스 언어를 사용하라는 사실상 언론 보도 지침이다. 예컨대 ‘도둑’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특정 지역 출신임을 표기하지 말라는 요구다. ‘범죄자’를 구분하는데도 노동자, 회사원, 교수 등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으로 구분하지 말고 단순하게 범죄자로만 처리해야 한다.
용어 사용 강조는 특정 용어 표현이 집단적 린치를 연상시키거나 특정 계층이나 지역을 배제하거나 따돌린다는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않아서다. 중국이라는 하나의 통합성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통합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도도 숨어있다. 이 모든 표현은 사실 중국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실체로서 거대 중국을 이끌어가야하는 당과 국가의 고뇌의 발로다. 중국에서는 국가 운영에서 늘 통합성 강조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과 지배의 합법성을 착근시키는데도 필요하다. 중국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중국공산당이 흔들려서는 안되는 일종의 신화를 갖고 있다. 당이 국가고 국가가 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 용어 하나까지도 당이 신경을 쓰는 이유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의 굳건함과 강건함이 신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구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모든 역량이 중국공산당에 의해서 배치되고 조정되며 강화되기 때문에 절대로 중국공산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건한 당의 기초는 대중이 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민심이다. 지난 100여년 간 중국공산당이 걸어온 길은 사실 인민들과 당과의 관계에서 민심의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 속에 걸어온 길이었다. 민심이 뒷받침 돼야 중국식 해결방안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중국공산당에게는 민심이 가장 큰 정치고, 정의가 가장 센 힘인 것이다. 시진핑 주석 집권 전반기에 반부패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것도 반부패 활동을 수행하는 당에 대한 인민대중의 신뢰와 지지가 있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민심에 귀를 기울이는 통치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로 ‘치국이정(治國理政)’을 내세우고 있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고 달성하기 위해 민심을 모으고, 민심에 바짝 다가서고, 민심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인식의 기저에는 민심이 바로 당의 통치 정당성과 지배 합법성을 떠받치는 기초라는 명제가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당에 대한 신뢰를 불식시키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당의 영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칫 방치하다가는 밑바닥에서부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최근 장춘에서 발생한 백신 문제,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대출 사건문제, 집중 호우로 발생한 도시 마비 사태, 수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금융 다단계 사건 등이 그렇다. 민심을 이반시키는 이러한 문제들이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불만이 조직적이고 체계화돼서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 사회조직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조합주의적 방식으로 관리하는 중국의 국가역량은 아직도 굳건하고 강력하다. 기껏해야 낙서로 의사를 표출하거나 개인적으로 인터뷰해 불만을 표출하는 정도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민심의 반응이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덜 문제가 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 당국과 중국공산당에게 이러한 민심 이반의 징후는 매우 위험한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민심의 향배에 따라 권력이 부침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아주 미세한 신호지만 그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머지않아 큰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중국은 특히 당국가체제이기 때문에 모든 민심은 당의 능력, 당의 존재 이유로 수렴된다. 추상같은 불호령으로 관련자를 발본색원해 다시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엄한 분부에도 불구하고 기저에서 반복적으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면 당과 국가도 새로운 방식의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한다. 가짜 백신 파문이 18명의 해당 기업 관계자를 입건해 사법처리한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jiay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