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은산분리, 신산업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대원칙 지키면서 인터넷은행에 한해 혁신 IT기업 투자 확대할 수 있어야"

입력 : 2018-08-07 오후 6:00:00
[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IT 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은산분리’ 제도의 제한적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금융위원회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개최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간담회’를 찾아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은산분리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일정은 지난 7월19일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방안’ 발표행사에 이은 두 번째 혁신성장 현장 행보다. 의료분야와 함께 은산분리 규제완화는 문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인 진보진영의 반대 목소리가 높은 이슈지만, 그동안 강조해 온 ‘실사구시의 과감한 실천’ 정신으로 정면돌파에 나선 셈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19세기 말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언급하고 “증기자동차가 전성기를 맞고 있었는데, 영국은 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고 이 법을 만들었다”면서 “결국 영국이 시작한 자동차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 규제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은행은 증기자동차로, 기존 금융회사는 마차업자들로 비유한 셈이다. 그러면서 “제도는 새로운 산업의 가치를 키울 수도 있고 사장시켜버릴 수도 있다”면서 “우리가 제때에 규제혁신을 이뤄야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혁신기술과 자본을 가진 IT기업의 인터넷은행 참여가 인터넷은행 활성화 및 국민편익 증대, 일자리 창출, 핀테크(FinTech) 산업발전 등에 기여할뿐 아니라 타성에 젖어 ‘이자놀이’에 안주해온 기존 금융권에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진단했다. 이른바 ‘메기효과’다. 문 대통령은 “그간 우리 금융산업의 시장구조는 기존의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굳어져 왔다”며 “이미 시장에 진입한 회사들은 경쟁과 혁신 없이도 과점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반면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새로운 참가자들은 진입규제 장벽으로 시장진입 자체가 어려웠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 금융 전체의 혁신속도가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 여기고 있다”면서 “금융 분야와 신산업의 혁신성장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새로운 물줄기가 될 것”이라며 국회와 금융당국의 협조, 국민의 응원과 지지를 거듭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방문 행사를 마친 후 페이콕 부스에서 핀테크 기술을 활용한 QR코드 결제 방식에 대해 설명 듣고 시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행사를 마친 문 대통령은 기업부스에 들러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의 ‘10분 내 계좌 개설’, 카카오뱅크의 ‘주말·휴일 전·월세보증금 대출’ 등의 서비스를 둘러보고 설명을 들었다. 핀테크 기업 페이콕의 모바일 앱 기반 단말기를 통한 ‘QR코드 간편결제’도 체험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은산분리 완화 방침을 놓고 대선공약 파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공약집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추진’ 항목에 “인터넷전문은행 등 각 업권에서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라고 밝혔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현행법인 은산분리 원칙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왔다. 이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규제혁신은 은산분리라는 기본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라며 “규제방식 혁신의 새로운 사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대주주의 사금고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주주의 자격을 제한하고 대주주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보완장치가 함께 강구돼야 할 것”이라며 원칙있는 규제완화를 언급했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도 전날 경제신문들과의 합동인터뷰에서 “금산분리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해 누구든 못 들어가게 만들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인터넷전문은행 등 은산분리 원칙에 막혀 있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수석은 “국내 금융산업은 대표적 독과점 내수산업으로 경쟁이 상당히 제약되고 규제 속에 안주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금융산업이 국가 경제에 필요한 서비스를 얼마나 잘해왔는지, 금융 수요자나 소비자의 요구를 얼마나 충족시켰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규제에는 가치의 차이가 있는 부분도, 밥그릇 싸움 부분도 있다”면서 “가치의 차이가 있는 부분은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조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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