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9일 새벽 지리산 산행을 중단하고 급히 귀경했다. 참모들과 함께 1박2일 일정으로 지리산을 종주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러운 폭우에 휴가를 중단했다고 한다.
예정된 휴가였다지만 그가 굳이 지리산을 다시 찾았던 이유는 뭘까. 잘 알려진 대로 박 시장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후로 지리산을 자주 찾았다. 2011년 가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전 지리산을 종주했고, 지난해 2월에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3박4일 동안 간부들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종주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의 의미는 조금 다를 듯하다. 그 동안의 산행이 중대한 결정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섭섭한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비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들여 추진하던 용산과 여의도 개발 계획을 잠정 보류한 상황이니 그렇다.
박 시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용산·여의도 개발 계획 보류 결정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중대한 결정을 쉽게 접을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에도 배경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계획 보류 결정 전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용산·여의도 개발 보류 발표로 과열된 시장이 잡힐 리는 없다. 그럼에도 박 시장이 보류 결정을 한 건 정부에 부담을 안겨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총대’를 맸다는 게 서울시 안팎의 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제동’은 박 시장에게는 섭섭함을 넘어 배신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김 장관으로서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취임 후 상당히 공을 들여온 주택가격 안정 문제가 최근 개각설이 나오면서 더욱 민감해진 측면이 있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박 시장이 부동산 시장의 ‘방화범’으로 몰린 상황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실제 진보·보수, 여당·야당, 서울 강남·강북 할 것 없이 박 시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사실 지방과 달리 서울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는 그동안 꾸준했다. 지난 6월 첫째 주 부터 넷째 주까지 한국감정원 기준 아파트값 상승률의 폭이 0.02%에서 0.10%로 확대되기까지 했다. 1000조원 넘는 단기부동자금이 투자처 없이 떠돌다보니, 돈이 될 것처럼 보이는 분야로 쏠리는 건 당연지사다. 그게 부동산이든, 증권시장이든 말이다. 박 시장을 방화범이라고 지목하기에는 인화 물질이 너무 많은 상황이다.
지리산으로 향했던 박 시장은 등반을 접고 서둘러 귀경해 폭우피해 현장을 챙기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아마 앞으로 그의 정책 행보에서 비움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신태현 사회부 기자(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