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세준 기자] 현대중공업이 실적 부진 속에서 자체 개발한 엔진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
12일 회사 측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간 중국 조선소와 힘센엔진 60여기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공급 물량은 2000~5400마력급 선박 발전용이다. 그리스 코스타마레사가 발주한 컨테이너선, 이탈리아 그리말디사가 발주한 로로선(자동차·중장비 운반선) 등 17척에 탑재된다. 내년 하반기부터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납품한다. 최근 중국이 중형 선박 일감을 싹쓸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핵심 부품인엔진은 현대중공업이 공급한다.
힘센엔진은 지난 2000년 9월 개발 완료해 2001년 1호기를 생산했고, 지난해 말까지 1만1000여대를 글로벌 선박에 공급했다. 최근 한-중 항로 카페리 여객선인 '뉴 골든 브릿지 7'호에도 1만6000마력급 힘센엔진 2기가 여객선 최초로 사용됐다. 이 선박은 오는 14일 취항 예정이다.
힘센엔진. 사진/뉴시스
현대중공업은 힘센엔진 개발 전까지 덴마크 만 디젤&터보(MAN)사 등으로부터 기술을 제공(라이선스) 받아 제작했다. 독자 기술 개발에 시동을 건 시점은 1990년이다. 민계식 전 회장(당시 기술담당 부사장)이 경영진 회의에서 1000마력급 중형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제안서를 냈다. 경영진들은 이 제안을 거절했지만 끈길긴 요구 끝에 결국 승인, 1994년부터 착수했다.
엔진 독자 개발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힘센엔진을 통해 현대중공업은 글로벌 선박 시장에 '중형엔진=힘센엔진'이라는 공식을 새롭게 세웠다. 지난 2015년 8월에는 배기가스 처리 장치를 장착한 신형 힘센엔진인 '클린 엔진'도 개발해 환경규제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기존 모델보다 출력도 20% 높였다. 현재 힘센엔진의 전 세계 중형 엔진 시장 점유율은 20% 수준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중공업은 기술을 받아오던 MAN사와 대등한 파트너십 관계도 구축했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최근 웨인 존스 MAN 사장 등 경영진을 만나 엔진 시장 동향을 공유하고 사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양사는 지난 2월에는 LPG·디젤 연료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엔진을 함께 개발하는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상세 설계를 현대중공업이 맡는다.
현대중공업은 나아가 힘센엔진 기술 라이선스 제공에도 나섰다.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산업투자공사인 두수르(Dussur)와 함께 선박·육상용 엔진 사업 합작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합작사는 내년까지 총 4억달러를 투자해 사우디 동부 라스 알헤어 지역 킹 살만 조선산업단지에 연산 200여기 규모 엔진 공장을 짓는다. 회사 관계자는 "사우디 합작은 힘센엔진의 첫 라이선스 사업"이라며 "힘센엔진 제품은 전 세계 40여개국에 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세준 기자 hsj121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