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걷힌 한반도…남북 경협 속도 낸다

방북 총수들 귀국 직후 경영진과 논의 예정…철도·도로부터 경협 물꼬

입력 : 2018-09-19 오후 7:21:16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한반도가 새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남북 정상이 65년의 기나긴 긴장과 대결의 구도에 종식을 선언함으로써 남북 경제협력의 불확실성도 걷어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UN의 대북 제재가 남았지만 '비핵화' 선언을 통해 북미 협상의 진전을 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 과정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등 투자 결정권이 있는 총수들이 곁에서 직접 지켜본 만큼 향후 최대 170조원에 이르는 경협 파급효과를 선점하기 위한 재계의 물밑 경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2박3일 방북 일정에 동행했던 재계 총수들은 귀국하는 대로 경영진들과 방북 성과 및 향후 경협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를 주재할 계획이다. 해당 그룹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일정과 주요 의제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총수들이 무엇을 보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를 공유하는 자리는 당연히 열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협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UN의 대북 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완화돼야 하지만,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놔야 시장이 열리는 즉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이들은 "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구체적인 투자 방안이 나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겉으로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격변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했다.  
 
 
앞선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재계 총수들이 직접 북한을 찾아 눈으로 경제 현황을 목격하고 당국자들의 의중도 확인한 만큼 경협을 대하는 재계의 태도는 분명 이전과 다르다. 이재용 부회장은 방북 첫 날인 18일 리용남 북한 경제 담당 내각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마음에 벽이 있었는데 이렇게 와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여러분을 뵙고 하니까 '이게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꼈다"며 "이번 기회에 더 많이 알고, 신뢰관계를 쌓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각각 SK와 LG의 사업들을 소개하며 북한과 협력 접점을 찾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10년 전 북한에서 무연탄을 수입했던 과거 사례를 언급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을 대신한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 남북이 빨리 발전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립 서비스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정권에 따라 뒤집어졌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종전이 선언되고 미국이 담보하는 불가역적인 새로운 체제가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총수들이 갖게 됐다"며 "이는 기업이 가장 경계하는 불확실성이 걷힌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일단 경협의 물꼬는 공동선언에 명시된 철도와 도로, 관광 등에서 시작될 전망이다. 리용남 내각부총리가 "북남관계 중에서 철도 협력이 제일 중요하고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코레일을 비롯해 철도 노선 구축 및 열차 생산, 레일 제작 등의 사업을 하는 현대로템과 현대제철 등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향후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대북 제재 수위가 낮아질 경우 에너지, 통신 등의 기간산업 인프라 구축 분야에서 SK와 포스코 등이 해낼 역할도 조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대북 7대 사업권을 쥐고 있는 현대는 마중물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포스코와 현대 등은 이미 그룹 내 경협 관련 TF를 조직하며 향후 있을 대변화에 대한 동참 의지를 분명히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남북 경협이 추진될 경우 올해부터 오는 2047년까지 예상되는 경제효과만 170조원 규모에 이른다.  
 
삼성 총수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찾은 이재용 부회장이 어떠한 미래를 구상할지도 관심사다. 리용남 내각부총리는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말해, 남측 최대 큰 손인 삼성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를 대하는 이 부회장의 고민도 깊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과거 평양에서 TV를 생산했던 경험이 있지만, 반도체·가전·휴대폰 등 글로벌 생산기지가 이미 구축된 현재로서는 추가적으로 나설 여지가 마땅치 않다. 삼성은 이 부회장 방북 직전 임원회의를 소집,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로부터 보고된 여러 안들을 검토했지만 건설 등을 영위하는 삼성물산 이외에는 딱히 경협에 나설 주체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인프라 구축을 넘어서는 대규모 직접투자를 결정하기에는 주어진 여건이 아직 녹록치도 않다.
 
한편 경제단체들은 이날 공동선언 직후 "남북 경협의 조기 진전 가능성이 커졌다"며 일제히 기대감을 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한반도 평화시대를 위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향후 북미 대화를 통해 실질적 진전들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해제돼 남북간 안정적이고 지속적 경제 교류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며 "남북 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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