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첫 번째 회의에서는 위원장, 간사를 선출하는 정도였으니 사실상 특위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회의였다.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업무보고를 했고, 특위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은 자기 의견을 내비쳤다. 이 자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또다시 국회의원 숫자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자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국민들이 의원 숫자 증원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국민들을 생각해서 ‘의원 숫자를 늘리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의원 숫자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자는 것은 지금과 같은 부패한 국회, 밥값도 못하는 국회를 현상유지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선거제도 개혁, 국회개혁에 사실상 반대하는 얘기다. 정치개혁에 반대하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국민여론’을 핑계 대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 분노하는 것은 의원들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에 있다. 국회의원 특권을 폐지한다면, 지금 6000억원대에 달하는 국회예산으로 300명이 아니라 400명의 의원도 쓸 수 있다. 특권폐지와 동시에 의석을 확대하는 것은 정치개혁의 방향이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의원 숫자 300명 유지는 특권유지와 다름없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야 하는 이유는 특권폐지 외에도 여럿 있다. 첫째,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의원 총수를 늘려야 한다. 이것은 중앙선관위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2015년 2월부터 중앙선관위는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300명 의원 중 253명을 지역구에서, 47명을 비례대표로 뽑는 상황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쉽지 않다.
각 정당이 얻은 표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선거방식이고,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밥 값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 등 정치개혁을 주장해 온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총수를 늘릴 것을 제안해 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서는 비례대표 숫자가 충분히 확보돼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현행 지역구 253석을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해법이 없진 않다. 의원 총수를 360명 이상으로 늘리고, 그 중 비례대표 숫자를 100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많이 배출하기 어려운 정당도 자기 정당이 얻은 득표율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아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맞출 수 있다.
그동안 밀실공천이 문제돼 왔던 비례대표 공천 문제도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지금은 정당의 내부공천에 대해 법이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민주적 공천을 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면 된다. 독일은 선거법에서 민주적 공천을 의무화하고 있다.
둘째, 국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도 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 지금 300명 의원으로 470조원이 넘는 국가예산을 제대로 심의하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인구 8200만명의 독일 의원 수는 작년 총선 기준 하원의원만 해도 709명에 달한다. 경제개발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인구 10만명당 1명의 의원을 뽑는다. 대한민국은 5000만명이 넘는 인구에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의원 숫자가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 특권을 없애고 의석을 늘려야 한다. 의원들이 과연 특권을 내려놓을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지만, 의원 특권폐지는 시대적 대세다.
지금 시민단체와 언론들이 국회에서 사용하는 각종 예산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를 주문했고, 감시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동안 논란이 돼 온 국회 특수활동비만 해도 1년에 65억원을 쓰던 것을 내년부터 10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1억5000만원에 달하는 국회의원 연봉은 줄이고 의원 개인보좌진도 현행 9명에서 7명 수준으로 줄이며, 낭비성 예산들을 대폭 삭감하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진짜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이비 주장을 펴는 정치인들이다. 마치 의원 숫자를 줄이거나 현상유지하는 것이 개혁인 것처럼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개혁에 저항하는 반(反)개혁세력이다. 이들은 사실상 현재의 특권국회, 부패한 국회, 밥값도 못하는 국회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세력이다. 이런 세력에 현혹돼선 안 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haha96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