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주석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 ‘홍샤오로우’(紅燒肉)였다. 삼겹살이나 오겹살 등 비계가 있는 돼지고기를 삶아 간장과 각종 향신료로 만들어 낸 홍샤오로우는 국민당정부군에 쫓기던 ‘대장정’ 때도 전속요리사를 두고 사흘에 한 번 먹을 정도로 홍샤오로우를 사랑했다. 그런 연유로 중국에서는 홍샤오로우를 먹으면서 ‘혁명의 맛’이라고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얼핏 보기에는 당나라 시인 소동파가 만든 동파육과 비슷하지만 조리방법이나 맛은 전혀 다르다. 마오 주석의 고향인 후난성 닝샹지방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에 간장과 설탕, 팔각 등 각종 향신료를 넣고 삶는, 후난식 조리법에 따른 것을 최고로 친다.
마오 주석은 외국지도자들이 중국을 방문하면 반드시 ‘홍샤오로우’를 만찬음식으로 내놓고는 맛을 물었다. 그리고는 “백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주치의가 지방이 많아서 삼갈 것을 권하지만 혁명가는 제국주의를 두려워하지 않고...”라며 ‘홍샤오로우 혁명론’을 설파했다. 마오주석이 홍샤오로우를 통한 중국혁명을 이야기했지만 실제 ‘마오시대’의 중국은 이성을 잃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비극과 개인숭배의 극단으로 치달았던 시대였다. 음식은 정치이데올로기나 정치지도자의 이미지를 대신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송이버섯을 보내고 우리가 제주산 감귤 200t을 보낸 것도 따지고 보면 지지부진해진 비핵화 및 북미회담과 남북관계를 이어가려는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는 청와대 식탁 메뉴는 늘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오만찬 메뉴는 거의 ‘칼국수’였다. 구중궁궐에서 고급요리를 즐길 것으로 알았던 국민들은 칼국수를 즐기는 대통령의 서민적 음식 취향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은 IMF 경제위기를 겪어야 했던 끔찍한 경제실패로 점철되면서 칼국수를 싫어하는 사람도 생겼다.
이달 초 청와대에서 여·야·정상설협의체가 열린 식탁에 ‘탕평채’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심하고 내놓은 탕평채는 아마도 국정운영의 파트너인 야당에 대한 탕평의 의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청포묵에 야채를 버무린 탕평채가 나오자 문 대통령이 직접 조선 영조(英祖)시절 탕평채라는 음식이 나오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야당 대표들도 화답하면서 탕평의 분위기가 연출됐다. 청와대는 지난 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만찬에 ‘독도새우‘요리를 선보여 독도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대신했다.
안동과 영주 등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즐겨먹는 음식 중에 ‘태평초‘가 있다. 신선한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로 끓이는 김치찌개에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을 넣는 것이 독특하다. ‘묵두루치기’라고도 불리는데 따뜻한 밥 한 그릇은 물론이고 막걸리와 궁합이 맞는 술안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태평초는 궁중음식 탕평채를 본떠서 발전시킨 서민탕평채로도 불린다. 청포묵 대신 흔한 메밀묵을 이용, 찌개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맛이 소문이 나면서 민간에 널리 퍼졌다. 특히 가을걷이가 끝난 지금이나 겨울에 여럿이 앉아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태평초를 두구 둘러앉아 ‘태평하게’ 먹고 태평성대를 꿈꾼다는 의미에서 태평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청와대 식탁에 태평초를 자주 올리는 것은 어떨까. 정부정책을 조율하는 청와대에서 먹는 태평초를 보고 국민 모두가 잘사는 태평한 시대를 꿈꾸고 고민하는 고위공직자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그런데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한 식탁에서 탕평채를 나눠먹은 지 불과 며칠 만에 야당은 조국 민정수석을 해임하라며 반발했다. 야당이 반대하는 조명래 환경부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예산안 심사 중에 총괄책임을 맡고 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전격 경질했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은 음식일 뿐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탕평채 사건’의 본질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