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해곤 기자]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4일. 초조한 마음을 안고 충청남도 청양군 공설운동장을 찾았다. 빗 속을 뚫고 도착안 운동장에는 두툼한 외투를 입고 긴장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운동장 한켠에는 천막과 안전펜스가 서 있었고, 중간에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장식을 단 안전고깔이 T자 형태를 맞춰 바닥에 놓여 있었다.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된 '초경량비행장치 무인멀티콥터 조종자' 자격증 시험장. 응시생이 시험 감독관 앞에서 드론 실기시험을 보고 있다. 사진/이해곤 기자
기자가 찾은 곳은 '초경량비행장치 무인멀티콥터 조종자' 자격증 시험장. 드론 자격증 시험이 치러지는 곳이다. 장비의 특성상 비가 오거나 기상이 좋지 않으면 시험이 치러질 수 없기에 시험 장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내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시험 시간에 이르자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그쳤고, 곧이어 시험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원주비행에서 많은 이들이 불합격해요"
시험이 시작되자 안전모를 쓴 응시생들이 운동장 가운데 드론을 가져다 놓고 안전펜스 뒤로 물러섰다. 옆에 선 시험감독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굳은 표정의 응시생이 드론 조종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곧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돌자 드론은 하늘 위로 떠올랐다.
떠오른 드론은 운동장 위에 세워진 안전고깔 위로 이동해 5초간 머무른다. 겉으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쉽지 않다. 조종사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입체 공간에 있는 드론의 움직임을 눈으로 파악하고 거리감을 측정하는 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오병철 시험감독관은 "드론이 고깔 위로 갔을 때 풍압으로 장식이 똑바로 아래로 눌러지면 제 위치를 찾은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그제서야 고깔 위 나풀거리는 장식의 용도를 알게 됐다.
고깔 위에서 '호버링(제자리 정지 비행)'을 했던 드론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쭉 직진했다가 되돌아 왔다. 잠시 옆으로 움직이는가 싶던 드론은 이내 대각선 하늘 위로 치솟았다가 다시 대각선 방향으로 내려온다. 실기시험 중 하나인 삼각비행이다.
삼각비행을 마친 드론은 둥근 원을 그리며 비행한다. 응시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원주비행이다. 원주비행은 드론을 조종해 지름 15m의 원을 그리듯 비행시키는 것이다.
드론 실기시험인 한창인 자격증 시험장. 원근감 때문에 조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진/이해곤 기자
응시생 대부분이 이 과정에서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다. 직장인 이 모씨도 원주비행에서 진땀을 뺐다. 이 씨는 "연습할 때 실력의 50%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며 "합격 여부가 오후에 발표 되는데 쉽지 않을 것 같고 만약에 떨어지면 다시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자격증 응시생이 늘면서 대기자 수가 많아진 탓이다. 오 감독관도 "드론을 전후진이 아닌 원을 그리면서 움직이게 되면 앞뒤 구분이 어려워진다"며 "과정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12~16분 정도 진행되는 실기시험이 끝나면 응시생들은 구술시험을 치른다. 드론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눠진다. 이론 학과시험을 70점 이상 획득하면 실기시험 응시 자격이 부여되고, 실기시험을 치른 뒤 구술시험도 곧바로 치러야 한다.
구술시험은 드론 기체나 드론 비행 시 안전수칙, 비행금지구역, 비상 시 대처사항 등에 대해 감독관이 질문하고 응시생이 답변하는 방식이다. 오 감독관은 "드론 시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안전이고, 이 때문에 충분한 연습을 해야 한다"며 "드론은 조종 미숙이나 기체 오류 등으로 언제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자격증이 드론 안전을 위해 예상외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정재상 교통안전공단 항공시험처 선임연구원은 "날아가는 드론이 추락하면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안전수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며 "드론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을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기시험 이후 면접 방식으로 진행되는 구술시험. 드론과 관련한 여러 정보와 지식을 물어본다. 사진/이해곤 기자
"갯벌에서 발생한 조난자를 드론으로 찾았어요"
드론 자격증 응시생 수는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공단이 무인멀티콥터(드론) 자격증 시험을 시작한 뒤 2016년까지는 전문적으로 필요한 사람들만 찾았다면 얼마전부터는 일반인들의 응시가 급격히 늘었다"며 "500명이 안되던 합격자 수가 올해는 1만명을 이미 넘었다"고 전했다.
정부의 드론 육성책도 한 몫 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시대 성장동력산업으로 드론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우선 12㎏이상의 대형 드론은 자격증이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자격증을 획득하면 항공촬영이나 방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교통안전공단의 전망이다.
실기시험이 한창인 드론 시험장. 흔히 보기 힘든 12㎏이상 대형 드론을 사용해 시험을 진행한다. 사진/이해곤 기자
군대 내에 드론 특기병이 생기면서는 입대를 앞두고 있는 청소년이나 현역 군인들의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최모씨는 "처음에는 자기개발 차원에서 관심을 가졌다가 지금은 내부에서도 드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아지고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추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치안과 교통 등의 업무에서도 드론 수요는 커지고 있다. 현직 해양경찰관이라는 강모씨는 "불과 며칠 전 드론으로 갯벌에서 조난자를 수색해 구조했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경찰학교에서는 올해 신임 순경 100여명이 드론 자격증을 취득했다. 실종자 수색 등의 용도로도 쓰이지만 불법 촬영과 같은 드론 사용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드론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관련해 교통안전공단은 우선 시험 횟수와 상시 실기시험장을 늘릴 방침이다. 이어 내년에 경기도 화성에 수도권 드론자격시험장을, 시흥에 드론복합교육훈련센터 건립을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센서 기반의 실기시험장과 드론전시관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청양=이해곤 기자 pinvol197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