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저번에 준 100장은 적어, 200장은 됐으면 좋겠어." 서울 노원구 '달동네' 백사마을에 거주하는 공정순(86) 할머니는 지난 18일 사회복지단체 연탄은행의 연탄 배달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뇌졸중 때문에 부축 없이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공씨는 자녀들의 소득원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달 배달된 1개월분 연탄이 100장에 머무르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비교적 춥지 않은 날에도 하루에 4장은 때야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연탄 땔 것을 권하자 "추울 때 때야지"라고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공씨는 "내가 연탄값 내야 할까봐 걱정"이라며 "다리가 이렇게 되기 전에는 폐지라도 잘 줍고 다녔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윽고 이날 연탄이 200장 배달되자 공씨는 활짝 웃으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연탄 1장으로 난방·온수·취사까지
막 군대를 제대한 '취업 준비생' 손주와 거주해 마땅한 소득원이 없는 김마리아(78)씨도 앞으로 후원되는 연탄이 줄어들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많았다. 김씨에게 연탄난로는 난방 이외에도 기본 생활에 필요한 도구이기도 했다. 머리 감을 물을 데우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언덕길에 있는 마을 특성상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겨울에도 찬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9월 중반부터 5월초까지 연탄을 1300장 넘게 사용하고 있지만, 정부가 지급하는 연탄 쿠폰은 300장 분량에 지나지 않았다. 김씨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 연탄은 '맥아리'가 없어서 더 많이 때야한다"며 "폐지 주워서 벌이가 되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백사마을 주민들이 연탄 수급을 걱정하는 이유는 연탄 후원이 전체적으로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단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연탄은행이 후원받은 연탄은 200만장으로 전년 같은 기간 350만장의 42% 수준이었다.
후원이 줄어든 이유는 경기 침체, 기부 관심 감소, 연탄 가격 상승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경기가 침체하면서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이 줄어들고, 개인의 경우 체감경기 하강과 공공요금 인상 등 삶을 팍팍하게 느끼면서 기부를 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움츠러든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11월 정부가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연탄 1장 생산가를 534.25원에서 639원으로 19.6% 인상한 점도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연탄 가격을 통제하는 대신 연탄 공장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보조금을 줄이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 구조다. 소비자 가격은 800~900원이 됐다.
사회복지재단 연탄은행과 우체국물류지원단이 지난 18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겨울추위 한창인데"…사용인구 노인 많아 더 걱정
후원이 줄어들면서 겨울을 나야 하는 빈곤층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전국 연탄 사용 인구는 14만가구 정도로, 이 중 연탄 지원이 필요한 빈곤층이 4만~6만가구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추위를 잘 타는 노령층이 많은 편인 관계로, 연탄을 때는 기간은 보통 10월부터 4월까지 7개월 동안이며 한 가구마다 때는 연탄은 1050장이나 된다.
정부가 빈곤층에게 연탄 쿠폰을 지급하긴 하지만, 통상 400~500장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기부로 충당하든 빈곤층이 자부담하든 해야 하는 실정이다. 기름 보일러를 무료 설치해주는 정책도 있지만, 정작 기름 비용은 1개월 40만원으로 연탄보다 훨씬 더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아무리 후원 갯수가 줄어들어도, 특정 가구를 배달 대상에서 누락시킬 수 없기 때문에 복지단체들은 모두에게 더 적게 배분하는 방식을 택한다. 1개월 기준으로 한 집에 150장 배달해주다가 30장으로 줄어드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허 태표는 "1월말부터 본격적인 늦추위가 시작될 것"이라며 "하루에 때는 연탄도 4장에서 5장으로 더 늘어난다"고 걱정했다. 연탄은행 관계자들은 지난달 31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가격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0년까지 보조금 삭감과 가격 상승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쿠폰 제공 범위를 넓히는 정책을 검토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쿠폰 지급 대상이 아니었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자로 선정할지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거주하는 김마리아(78)씨가 난로에 연탄을 갈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