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100년의 질서'인 '신한반도 체제 구상'을 발표했다. 남북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으로 한반도 평화·경제 공동체를 만들고,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와 통일까지 바라보는 큰 그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신한반도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다"며 △대립과 갈등을 끝낸 평화협력공동체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경제협력공동체를 핵심 방안으로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문 대통령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며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남북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경제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과 남북 자유 왕래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아세안, 유라시아를 포괄하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의 종단철도가 완성되면 지난해 광복절에 제안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의 실현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것은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발전하고 미국을 포함한 다자평화안보체제를 굳건히 하게 될 것"이라며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로 연결되고,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평화안보 질서로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기념사는 전날 베트남 하노이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영향을 받아 일부 내용이 수정·보강됐다는 후문이다. 당초 북미가 '영변 핵시설 폐기-대북제재 일부 완화(남북경협)'를 서로 주고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구체적인 '남북경협 로드맵' 구상 등을 준비했지만, 결국 무산되면서 경협 의지를 강조하는 수준으로 일부 '톤다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대화 중요성과 '중재자' 문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내용은 보강됐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회담에 대해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직접 만나 협의를 계속해나가자"고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동의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해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거나 '핫라인' 등으로 통화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한편 이날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금기어인 '빨갱이'라는 단어를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며 다섯 번이나 작심 언급했다. 당초 청와대 내부에서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냐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새로운 100년의 시작을 위해 왜곡된 과거사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문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또 향후 남북경협이 본격화될 때 '빨갱이'(종북) 프레임이 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으로도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빨갱이'라는 표현이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낙인찍는 말로 사용됐고, 해방 이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고 양민학살·간첩조작·민주화운동 등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이었음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규정돼 희생되었고 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며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선'은 우리 안을 갈라놓은 이념의 적대를 지울 때 함께 사라질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될 것이고, 새로운 100년은 그때에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진관사 대형 태극기 뒤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