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내년에 500조원 수준의 슈퍼예산이 편성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가 나랏돈 씀씀이를 깐깐하게 따지기로 했다. 재량지출을 10% 이상 구조조정해 불필요한 예산은 강도 높게 손질하고, 꼭 필요한 부분부터 쓰겠다는 취지다. 내년 세수여건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효과가 적은 기존 사업에 재정이 투입되는 것을 막고, 절감한 재원으로 복지지출에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26일 정부가 발표한 '2020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보면 올해 처음으로 각 부처들이 기획재정부에 정책사업 증액 및 신규사업 예산을 요구할 때 재량지출을 10% 깎도록 했다. 재량지출은 정부가 정책적 의지에 따라 지출 대상과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예산으로 구체적인 재량지출 목표를 수치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내년 나라살림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내년 세수 호황 기조가 꺾일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법인세 증가세가 둔화하고, 자산시장 변동성으로 양도소득세도 덜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안일환 기재부 예산실장은 "재정 여건으로 보면 내년은 올해와 비교해 세수 여건이 둔화될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재정 수지 측면에서 재정건전성 관리를 상당히 고민하면서 재정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재정 규모를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년에 확정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이 기간 재정 지출이 연평균 7.3%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유력한 이유다.
실제 내년에는 소득 분배지표 악화, 고용절벽, 민간투자, 혁신성장 등 정부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기초노령연금, 아동수당 등 줄일 수 없는 복지의무지출들이 산적해 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사회안전망 강화나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 대응 등 주요과제 예산사업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 미세먼지 저감투자 확대 등 모두 재원이 추가로 필요한 신규 사업들이다.
결국 내년 예산은 경기 대응과 소득 재분배에 중점적으로 쓰일 예정이다.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 무엇보다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기존보다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다는 방침이다.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 친환경차 보급 확대, 중국과의 공동 협력 추진 등 미세먼지 저감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미세먼지 저감 투자에 재원을 사용했었지만 내년부터는 좀 더 중점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얘기다. 안일환 실장은 "미세먼지는 전 국민의 관심사인 만큼 투자 소요에 '상당히 많이 넣었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고민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2022년까지 국내 미세먼지 발생량을 30% 이상 줄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유차 감축, 친환경차 확대, 한·중 협력 강화 등 미세먼지 절감 예산에 전폭적인 힘을 실겠다는 의지다. 올해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에 흩어진 미세먼지 저감 예산은 1조9000억원이다. 실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세먼지 대책은 기존 예산으로 한계가 있어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규모는 검토 중이지만 조 단위 규모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올해 미세먼지 추경까지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미세먼저 저감 예산은 최소 3조원 이상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세종=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