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성 기자] #김예지씨(여·39세)가 시각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안 때는 두 살 무렵이다. 서서히 시야가 좁아지다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망막색소변성증이었다. 낙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담담하게 딸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맹학교에 입학시켰다. 19년 뒤 김예지씨는 100회가 넘는 국내·외 피아노 연주공연과 3D촉각악보 발명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피아니스트가 됐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전례가 없었던 일을 해낸 것이다.
제39회 장애인의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상를 수상한 3인. (왼쪽부터) 김예지·최보윤·황영택씨.사진/보건복지부
18일 실시된 제39회 장애인의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상를 수상한 김예지씨는 "세대가 바뀌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음악계에서는 아직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며 "다만 힘든 것도 잊을 만큼 음악을 할 때 자기만족이 크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씨는 시각장애인으로 2000년도 숙명여자대학교 피아노과에 일반특차전형 수석입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KBS 열린음악회뿐 아니라 체코와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의 독주 무대를 통해 전문 피아니스트로서 인정받았고, 활발한 연주 활동으로 2004년 학부 졸업과 함께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07년에는 존스홉킨스 피바디 음대에서 피아노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10년에는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에서 피아노 교수법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때 발명한 것이 ‘3D 촉각악보’(다차원 촉각악보)다. 3D촉각악보는 일반 악보의 음표와 같지만 3D로 그려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음표를 이해하도록 만든 악보다. AP통신과 유로뉴스(Euro News) 등 국제 사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영국 국제 컨퍼런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예지씨뿐 아니라 최보윤(여·41세) 법무법인 태신 변호사, 황영택(남·53세) 수레바퀴 재활문화 진흥회 경기지부 회장이 올해의 장애인상에 이름을 올렸다. 먼저 최보윤씨는 2009년 사법시험 51회에 합격했지만,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됐다. 예비 법조인으로 사법연수원 재직 중 찾아온 장애였기에 더 큰 상처였지만, 9년이 지난 지금 최씨는 손해배상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중도장애인과 가족들을 많이 만났다는 최 변호사는 "장애인들이 힘든 부분이 많구나, 내가 변호사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이후 손해배상전문 변호사로서의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201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장애인 권리구제와 법률상담 활동을 시작했다. 성남시의 찾아가는 법률상담으로 2014년부터 현재까지 50건 이상의 장애인 법률자문 및 소송구조를 했으며, 2014년 장애인 관련법 강의, 2017년에는 장차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힘을 보탰다. 최씨는 "상담을 하러 오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중도장애인임에도 자신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면서 "제가 가진 법률 지식으로 이 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다는 게 좋다"고 뿌듯해했다.
또 1992년 건설회사 재직 중 크레인 사고로 하반신 마비 중도 장애인이 된 황영택씨. 그는 고통의 시간을 극복하고 재활 운동으로 장애인 테니스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1999년 방콕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후 휠체어가 미끌어지는 사고로 그는 테니스 코트를 떠나야 했다. 거듭된 사고에도 황씨는 당시 "몸이 안 된다면 목소리로라도 뭔가 할 수 없을까"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황씨는 성악가로 변신해 장애인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세종=이진성 기자 jin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