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10일 세 번째 청와대 간담회는 사실상의 '국무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갖고 민관이 함께 일본의 '수출 규제'라는 난국을 헤쳐나가자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읽힌다.
회의 장소는 평소 국무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 충무실이 선택됐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본관 내부로 초청해 회의를 가진 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비상한 각오" "전례 없는 비상상황" 등의 표현으로 지금의 엄중한 상황인식을 내비쳤다. 기업인들도 "위기를 기회로 삼자"며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단기·중장기적 대처를 해 나가자고 뜻을 모았다.
간담회에는 정부 관계부처 장관들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34개) 중 31개 기업 총수 또는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했다. 불참한 3개 기업은 부영(이중근), 대림(이준용), 에쓰오일(후세인 에이 알-카타니) 등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 출장 관계로 불참했고, 각각 윤부근 부회장과 황각규 부회장이 대신 참석했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에서는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이 모습을 보였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은 GS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이 사회를 맡았고, 참석자들은 긴 타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앉았다. 문 대통령의 좌우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태원 SK 회장이, 맞은편에는 손경식 회장이 자리했다.
일본 수출제한 조치에 타격을 입은 LG, SK, 삼성 관계자가 먼저 발언하고, 국내에서 부품을 생산 중인 금호와 코오롱이 이어서 발언했다. 여기에 현대자동차, 효성 등 아직 일본 수출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곳도 발언에 나섰다. 당장의 상황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일본의 추가 제재조치에 대한 대응책까지 폭넓게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참석자들의 자유발언도 진행됐다.
간담회는 당초 예상보다 30분 늘어난 2시간가량 이어졌다. 청와대는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와, 해당 기업과 일본 정부의 관계 등을 고려해 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익명을 전제로 몇몇 기업인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한 전자분야 그룹 회장은 "장비쪽보다 소재·부품 쪽의 국산화율이 낮다"며 "우리가 최고급 제품을 생산하다보니 거기 들어가는 소재·부품도 높은 기준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재·부품의 국산화에는 긴 호흡을 가진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가 자본이 늙어간다는 것"이라며 "돈이 너무 안정적인 분야에만 몰리고 부품·소재 등 위험이 큰 분야로는 가지 않는다"면서 국내 벤처캐피털 활성화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수입선 등 조달망 다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이 참석자는 "특정 국가의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특히 화학 분야에 있어서는 강점이 있는 러시아, 독일과의 협력 확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이외에 △부품·소재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부품 산업 M&A 적극 검토 △미래기술 발굴을 위한 R&D 투자 △신규화학물질 생산에 따른 환경규제 어려움 등 다양한 제안과 의견들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최대한 정부가 뒷받침하겠다"면서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주요 기업 간 공동기술 개발, 대·중소기업 간 부품기술 국산화 협력 확대 등을 통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10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