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인터넷 댓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근본적인 제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악성 댓글(악플)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설리씨에 이어 지난 24일 구하라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업계의 자율규제를 넘어선 법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2년 위헌 판정을 받고 폐기됐던 인터넷 실명제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악플의 폐해가 부각되면서 포털 사업자를 포함한 업계의 자정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달부터 포털 다음의 연예 뉴스 댓글을 잠정 폐지하고, 인물 키워드에 대한 관련 검색어도 제공하지 않는다. 도입 취지와 달리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댓글 전면 폐지 등 내년 상반기 중 이뤄질 서비스 개편을 두고 다양한 옵션도 고려 중이다. 네이버는 댓글 폐지 대신 필터링 기능을 강화했다. 인공지능(AI)을 접목한 필터링 기술인 클린봇을 뉴스 서비스에 적용, 욕설을 포함한 댓글을 자동으로 숨겨주는 기능을 도입했다. 악플을 상습적으로 다는 이용자에 대한 제재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은 악플 방지를 위한 이른바 '설리법'을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댓글 아이디 풀네임과 아이피(IP)를 공개하는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차별·혐오 댓글에 대해 누구라도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가 악플을 사전 인지해 삭제하는 등 방안들을 담았다.
악성 댓글에 의한 폐해가 부각되면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해결책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설리 사건 이후 불거진 인터넷 실명제는 실효성도 없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위험 때문에 이미 위헌 판정이 내려졌다"며 "현재 댓글 폐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댓글 기능을 아예 없애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또 포괄적으로 인터넷 상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법적 처벌 조항을 강화하는 논의들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고소를 취하하면 그만"이라며 "그보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경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악플에 대한 형사처벌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일부 댓글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명예훼손)이 적용돼 관련자가 강하게 처벌될 수 있지만, 대부분 악플의 경우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돼 가벼운 벌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악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을 수 있다는 생각 하에 보다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현행법상 모욕죄의 경우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를 해야 하는데, 악플의 파급력 등을 고려하면 고소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악플 작성자의 처벌뿐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02년 소위 '프로바이더(서비스 제공자) 책임 제한법'을 만들어 사업자의 관리와 책임 의무를 강화했다. 독일도 혐오 발언 등에 대한 신고 이후 24시간 내 조치가 없을 시 상당한 벌금을 부과하는 등 사업자 처벌이 엄격히 이뤄지고 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