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

입력 : 2020-01-16 오전 6:00:00
“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즘 입에 착 달라붙은 노래 ‘사랑의 재개발’이다. 무얼 하다가도 이 첫 소절을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까지 등장한 노래니까 요즘 인기는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탄생한 신인가수 ‘유산슬’의 데뷔앨범에 실린 곡이다. 유산슬이 국민예능인 유재석의 트로트가수 캐릭터란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렇게 부른다. 그게 재미의 한 포인트니까.  
 
가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하진 않겠지만, 예능프로를 통해 곡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또 유재석이 불렀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빠른 박자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흔한 사랑노래를 ‘재개발’로 표현했다는 것이 인기를 얻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로또’와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재개발을 전혀 생뚱맞은 사랑노래에 갖다 붙여서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재미.
 
이 곡을 택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검찰개혁 깃발을 높이 들고 경색된 정국을 얼마나 힘들게 돌파했는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고 검찰인사까지 단행한 후에 청와대에 울려 퍼진 이 첫 소절은 ‘이제부터’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노래를 만들 때 ‘재개발’ 아이디어를 낸 유재석이나, 작사가 김이나는 ‘재개발’이란 단어 자체의 매력에 꽂혔던 것 같다. 가사에도 나온다. 금싸리기 같은 내 맘을 그냥 두지 말아달라거나 내 맘에 전철역을 내어달란 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재개발’이 맞다. 온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기치 아래 또 한 번 부동산 시장에 대해 강력한 경고 사인을 보냈는데 사실 무엇이 정상인지 잘 모르겠다. “집값이 급등한 일부 지역은 집값이 원상 복귀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번 정부 들어 급등한 아파트의 경우 지금 시세에서 3분의 1, 4분의 1쯤은 빠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는가는 둘째치고 만약 그리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주인과 세입자는 물론 집값과 묶여 있는 금융권과 나라경제는 괜찮을까?   
 
그보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과 여당의원들이 과연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아파트값 잡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과거엔 그런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집값 올릴 공약만 늘어놓았다. 너도 나도 뉴타운 공약을 쏟아냈던 2008년 총선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아파트값 앞에선 여도 야도 없다. 
 
요즘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으로 통하지만 줄곧 ‘부동산공화국’, ‘아파트공화국’이기도 했다. 이 오명을 벗으려면 이런 땜질식 징벌적 규제로는 안 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순리에 맞춰 물꼬를 내야 한다. 
 
당장의 급급한 틀어막기가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를 내다본 주택 정책은 언제쯤 보게 될 수 있을까? 멀리 내다보고 씨앗을 심어야 “팥도 나고 콩도 날 텐데.”
 
 
김창경 증권부장·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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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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