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원 경희대 교수
비례연합정당으로 출발한 '시민을 위하여'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정책적 쟁점이 없는 2020년 총선에 어떤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소수 정당에게 원내진입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던 선거법 개정의 결과는 전혀 엉뚱한 지점으로 한국정치를 몰아가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의 결함으로 거대 정당에 의한 비례연합정당이 현실이 되었다. 현실은 최악을 피하면서 차선을 선택하게 만든다. 그래도 2020년 총선에 시민들이 주도하고 있는 '시민을 위하여'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시민들은 2020년 총선이 2016년 촛불혁명의 시대적 과제를 일단락 짓는 선거가 되기를 바랐다. 2016년 10월 29일에 시작되어 2017년 3월 11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제도권 정치와 극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 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쏘아 올렸다. 그 뒤 3번에 더하여 23번 집회 동안 1700만명이 모였던 촛불집회에서 제도권 정치를 견인해 내면서 부패한 권력을 탄핵하고 광장의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를 열었다.
촛불시민의 힘은 2017년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고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집권 여당에 압도적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 때부터 올해 쟁점없는 밋밋한 선거는 예고되고 있었다. 지방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20대, 30대의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진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기초자치단체를 비롯한 지방의회 선거는 청년과 여성이 제도정치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거대 여야의 양당은 청년과 여성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는 데 극히 인색했다.
그 사이에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되지도 못하고 사장되었다. 촛불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역사에 자리 잡으려면 그 제도적 정신이 헌법개정을 통해 제도화되어야 한다. 2020년 총선은 2016년 촛불혁명으로부터 변화해 온 한국정치의 변화를 담아내는 정치적 틀을 만드는 것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번 총선과 그 이후 제21대 국회에서 그 과제가 수행되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는 4년을 기다려 2024년 총선에 다시 한 번 촛불혁명의 제도화라는 과제를 남길 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에서 지금까지 정당들의 공천과정과 선거쟁점으로 보면 촛불혁명의 제도화하는 다음 국회를 구성할 것이라는 흐름은 생겨나지 않고 있다. 보수 야당에서 그 어느 때 못지 않는 현역의원 물갈이가 있었다고 하지만, 새롭게 충원된 후보들에서 새로운 흐름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정책담론이나 정치쟁점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있다. 집권 여당에서도 시스템 공천으로 조용하지만 감동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집권 여당도 새로운 정치 아젠다는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2020년 총선에서 마지막 희망은 비례연합정당에 있다. 미래당과 녹색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 새로운 담론과 정책 아젠다를 가진 정당들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로써 이번 총선에서 새로운 아젠다를 제기하고 선거쟁점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비례연합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선은 '시민을 위하여'에 희망을 걸어 본다. 이 플랫폼 정당은 기존의 시민단체가 아니라, 촛불혁명 이후 등장한 자발적 시민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시민을 위하여'에서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아젠다가 제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민 발안, 국민 투표, 국민 소환 등 직접 민주주의 아젠다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2018년 대만에서는 10개의 국민발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촛불혁명 이후 한국정치에서도 이제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제대로 제기되어야 할 시점이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국민투표도 유권자의 2%에 의한 국민발안으로 시작되었다.
녹색당과 미래당의 정치아젠다들도 이번 총선과 다음국회에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로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제도화의 틀을 마련할 수 있다. 비례연합정당에서 미래형 아젠다가 제시되어 시민들에게 쟁점을 불러 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정치아젠다들이 제기되는 방식도 지금까지와 달리 시민참여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도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번 총선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비례연합정당이 되었다. 참여하는 미래형 아젠다를 가진 정당에서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민주도의 '시민을 위하여'가 2020년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의 진원지이기를 바란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 cwl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