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총선 후 정치권의 정의와 미덕

입력 : 2020-04-17 오전 6: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언제나 그랬듯이 말 많고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되었던 2020 총선이 막을 내렸다. 곧 새로운 선량들이 여의도에 입성할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경구는 사자성어에도 기도문에도 나오지만, 일단 선량이 되면 빛나던 의지와 굳은 약조가 사라지고 선인들의 전철을 되풀이한다. 당 지도부나 원내대표단의 지휘를 받는 의원 개개인은 합리적 사고나 균형 잡힌 행동이 불가능해진다. 국회의원은 의원총회에서 결정된 바를 행동에 옮긴다지만, 정당법(제29조)상의 기구(의원총회)가 국회 안에서 의원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이상한 현상이 빚어진다.
 
헌법과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각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또는 전체 본회의 일원으로서 집합적으로 행동한다. 국회의원은 임기 초에 "나는…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국회법 제24조)을 선서한다. 국회의원은 정당의 대표자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임에도 왜 자꾸 선서를 망각하고 정당의 대표자처럼 행동하는가? 의원총회와 원내대표 제도 탓이요, 공천과 지역구 예산배정 때문이다. 법정에 선 증인은 선서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는데, 선서를 위반한 국회의원은 그렇지 아니하다. 형평에 맞지 않는다.
 
많은 식자들은 "법원 행정처가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국회와 정당의 보조기구들이 입법권 독립을 침해함을 간과한다. 원내대표는 국회법(제33조)상 교섭단체의 대표자이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각부 장관들을 지휘하듯이 개별 의원들을 지휘할 권한이 없다. 국회의원은 원내대표의 지휘를 받을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정당의 이익이 아닌 국익을 위하여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제21대 국회가 열리면 의원총회와 원내대표의 기능을 정상화시켜 의원들을 독립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자의 선택이 상대평가임을 망각하고 절대평가를 받은 것처럼 자만해진다.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구태를 개혁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한다. 행정부를 호통치는 만큼 내부를 향한 준엄한 성찰이 없다. 왜 그럴까? 정치인들이 고안해 낸 정당이라는 제도의 폐단 때문이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태어난 정당이 권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이러한 비정상적 현상은 엄밀히 말하면 정당의 월권이다. 광역단위 정당들의 출현을 봉쇄한 정당법도 헌법상 지방자치 정신에 반하며 정당법상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가로막는다. 
 
정당은 겉으로 3권분립을 유지하면서 속으로 3권분립을 파괴한다. 내각제가 아님에도 여당의 지도부는 당정협의회와 같은 행정부와의 조정장치를 통하여 행정부를 통할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야당 지도부가 배제된다. 민주적이지 못하다. 어쩌다 성사되는 여야 영수회담이나 대통령과의 대화는 통과의례로 흐르기 쉽다. 정상적인 당정협의라면 야당 지도부도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각 위원회나 청문회를 통하여 당정이 만나야 한다. 교섭단체, 원내대표, 당정협의와 같은 비정상적 경로들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잡는 것이지만 그 핵심기능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이다"(헌법 제8조제2항). 그럼에도 어제까지의 한국 정당들은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기보다는 자꾸 상대의 발목을 잡아 시비곡직을 가리는데 앞장섰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나무라는 말은 난무하였지만, 그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하여 "어떻게 하자"는 대안을 듣기 어려웠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정강·정책으로 승부를 걸지 않고, 보다 짜릿한 원색적 비난으로 상대를 욕하여 지지율을 올린다면, 정의도 미덕도 아니다. 정당들이 막대한 국고보조를 받는 이유가 퇴색된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선진형 토론을 기대한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에 나타난 한국사회의 자화상은 양극화이다. 영남과 호남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다당제가 무너지고 양대 정당제로 돌아갔다. 유럽의 정치권은 생물다양성처럼 정치적 의사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다당제로 발전하였음에도 한국의 소수정당들은 4년 만에 스스로 다당제의 발목을 잡았다. 소수정당들은 투표함이 열릴 때까지 제20대 국회에서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라"는 민의를 실천하지 못하고, 민심이 지평선 너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공학적 계산에 매몰되어 지나간 영광의 부활을 꿈꾸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왜곡된 비례대표제를 고쳐야 할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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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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