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용 정치팀 기자
21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치하게 된 까닭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원 구성 협상에서 시작됐다. 여야 모두 서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협상을 거듭하게 됐고 결국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몫이 됐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려고 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때문이다. 체계·자구 심사권은 논의 법안들이 헌법이나 법률 체계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지 따져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법사위는 이 권한으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추진하고자 하는 입법에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 입장에서는 정부여당 입법을 견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법사위를 반드시 차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체계·자구 심사권은 법사위가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 '상원 노릇'을 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초래했다. 3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법사위의 상원 역할' 논란이 고스란히 재연됐다. 스포츠계 비리 조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인 이른바 '고 최숙현법'을 놓고 통합당은 비리를 조사하는 스포츠 윤리센터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안소위의 추가 심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넘어온 법안을 내용까지 고치는 것은 월권이라며 맞받았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통합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통과됐지만 자칫 법사위에서 반려돼 법안소위에서 추가 논의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같은 날 민주당이 법사위에서 상임위의 의결법안을 수정하려고 했던 순간도 있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운영위에서 의결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운영 규칙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정 기한까지 추천이 없을 때 국회의장은 교섭단체를 지정해 위원 추천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의 운영규칙 조항을 다시 살려서 통과시키자는 의견이었다. 결과적으로 다른 민주당 의원들의 우려를 반영해 운영위에서 통과한 원안을 유지해서 법사위에서 통과시켰지만 언제든지 체계·자구 심사권이 발동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법사위에 체계·자구 심사권이 존재하고 있는 한 여야의 이러한 행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법사위의 월권·상원 논란은 21대 국회에서 해소해야 한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고 체계·자구 심사권은 각 상임위의 법안 축조심사 과정에서 행사하도록 하거나 별도의 체계·자구 검토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최소한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의 내용이 수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주용 정치팀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