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추미애 논란에 멍들어가는 '민생'

입력 : 2020-09-21 오전 6:00:00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정치판은 온통 추미애 법무부 장관 논란으로 휩싸여 있다. 4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았지만 총선 때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추 장관 아들과 관련된 병역 의혹은 지난 1월부터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관련해 국민 여론이 두 동강 나버린 것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고 심사하는 자리인 대정부 질문은 추 장관을 향한 '대장관 질문'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서욱 신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역시 추 장관에 대한 논란을 검증하는 자리로 퇴색해 버렸다.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우리 경제는 퍼렇게 멍이 들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오로지 추미애 장관 아들과 딸의 의혹 논란에만 매달려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에는 절대로 밀릴 수 없다며 총력을 다해 추 장관을 엄호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의혹과 논란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추 장관의 사퇴를 연신 요구하고 있다.
 
대화와 절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재자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비례 위성 정당 꼼수를 통해 두 정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가져가버린 폐해다. 제3정당의 중재는 기대조차 못하는 상태이고 국회의장이나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정치권의 추 장관 관련 공방 속 에서 우리 경제와 민생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다.
 
우선 자영업층과 소상공인을 위한 '재난지원금' 문제다. 코로나19가 하반기면 거의 종식되고 V자 경제 반등은 아니더라도 U자 반등을 기대했던 한국 경제다. 그런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2차 유행 조짐이 보이고 경제는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있다. 1차 긴급 재난지원금으로 골목 상권과 바닥 경제를 되살렸던 정부와 여당은 2차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번에는 모두에게 지급이 아닌 선별지급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던 고위험 시설을 운영하는 자영업층과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지급 대상을 선정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되겠지만 거의 땅바닥에 내몰린 이들에게 잠깐 숨을 쉴 수 있는 긴급 수혈의 의미는 있다.
 
그렇지만 느닷없는 통신비 지급은 오히려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긴급 재난 지원금에 대해 성의 있고 깊이 있는 준비가 없었던 허점을 드러내고만 것이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1일 실시한 조사(전국500명 유무선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 응답률5%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통신비 2만원 지급에 대해 잘한 일인지 잘 못하는 일인지' 물어본 결과 긍정 37.8%, 부정 58.2%로 나타났다. 국민 여론조차 헤아리지 못한 정치권의 결정이다.
 
코로나19로 주문 배달이 부쩍 늘어난 데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택배 물량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택배 노동자들은 현재의 택배 시스템 속에서 도저히 일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에서 소비자들이 주문하면 배송할 제품은 물류 창고에서 분류된다. 여러 시간이 걸리는 분류작업이 끝나고 나면 배송을 시작한다. 경기 악화로 택배 노동자 한 사람이 직접 트럭 운전을 하면서 배송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택배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분류 작업에 대한 임금은 지불되지 않는다고 한다. 새벽에 제품을 싣고 온 차량이 물류 창고로 들어오고 이 물건을 내리는 일부터 시작해 분류 작업을 하고 '번개 배송'을 위해 도로로 나서게 된다. 식당에 앉아 여유있게 하는 식사는 상상조차 힘들고 저녁 늦게야 간신히 업무가 끝난다고 한다. 과로사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해진 택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택배없는 날'이 마련되기도 했었다. 오죽했으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상황까지 오는 것일까. 이런 열악한 상황을 두고 국회는 연일 추 장관 의혹 공방으로 날밤을 새고 있다. 택배 문제 해결은 언감생심이다.
 
그냥 힘든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산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주식 시장만 잘 나가지 실물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위기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이 창업주인 이스타항공은 수백 명의 정리 해고를 통보한 상태다. 돈 벌기는 점점 힘들고 내야할 세금은 더 많아지고 있다며 작정하고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중소상공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 앞까지 가서 '생계 해결'을 목 놓아 부르짖는 노래연습장 업주들의 절박한 심정은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추 장관 관련 의혹을 파헤치거나 야당 공세를 방어하는 일이 아무런 가치 없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무너지고 있는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해 뛰어준다면 어디 덧나는 일일까.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insightk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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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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