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국민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상임위원회로 회부된 국민동의청원이 총 8건에 달했지만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소관 상임위원회 청원심사소위 회의는 21대 국회 들어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국회 청원 무용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현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4일 국회에 따르면 21대 국회 출범 이후 30일동안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상임위에 회부된 청원은 현재까지 총 8건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여성가족부 폐지,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 제·개정 반대 및 한의대 정원 이용한 의사 확충 재고, 모든 노동자 근로기준법 적용·노조활동 위한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위한 특별법 개정, 4·16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 낙태죄 전면 폐지·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 등이다.
국회 상임위원회로 회부된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소관 상임위원회 청원심사소위 회의가 21대 국회 들어 단 한번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처
이 가운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 낙태죄 폐지 등 3건의 청원은 11월에 성사된 안건이라는 점에서 아직까지 상임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5건의 청원은 7월에서 9월 사이에 성사된 안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단 한번도 청원소위에서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은 지난 9월 첫 정기국회가 열린 이후 청원소위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대부분의 상임위 청원소위 구성이 9월초에 이뤄진 가운데 복지위의 경우에는 지난달 21일 소위 구성이 마무리됐다. 국민들이 청원을 입법 참여에 나섰는데 정작 청원을 처리해야 할 국회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과 대통령 기록물 공개 청원에 관한 국회 논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안건이 여당에 유리한 정치적 의제라는 점에서 야당이 입법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 측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야당에서 하기 싫어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쪽(야당)에서 계속해서 불가피하게 (일정을) 못 잡겠다고 나오면 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여야 모두 이번달에는 예산안 심사로 인해 청원소위 일정을 뒤로 미루는 분위기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는 국민의 정치 참여를 높인다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청와대 청원은 정부 고위 관계자가 원론적인 답변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는 반면에 국회 청원은 상임위에서 논의를 거쳐 입법까지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실명 인증을 거치기 때문에 청와대 청원과 달리 국회 청원은 중복 동의가 불가능하다. 온라인 청원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제도를 현실화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국회 청원을 입법화 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올해 1월 20대 국회에서 국민동의청원이 처음으로 실시된 이후 상임위에 회부된 청원은 총 7건으로, 이 중 2건만이 상임위를 통과하고 나머지 5건은 자동 폐기됐다. 상임위 문턱을 넘은 2건의 청원은 n번방 사건과 관련된 안건으로 해당 청원은 이미 의결한 법안에 취지가 반영됐다는 판단에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고 폐기됐다.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청원심사소위 회의가 21대 국회 들어 단 한번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정치권에서는 국회 청원이 실제 입법으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청원소위 회의 일정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청원소위 회의 횟수가 법안심사소위 회의 횟수보다 적게 진행되기 때문에 법안을 심사할 시간도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법안의 경우에는 정부가 제출하거나 의원 한명이 대표 발의하고 10명의 의원들이 공동발의자로 참여다보니 해당 상임위에서 법안소위가 열리는 횟수가 많고 논의도 많이 이뤄지는 편"이라며 "그런데 청원소위 회의는 실질적으로 열리는 횟수 자체가 매우 적다. 이런 부분이 청원의 본회의 통과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