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결혼, 임신, 그리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회사를 다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심각하게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경력 단절은 여배우들도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배우 박하선은 결혼, 그리고 출산으로 인해 캐스팅 순위에서 밀렸던 사연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박하선은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조은정을 연기하면서 받았던 상처를 위로 받고 더 나아가 자신이 배우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계기로 삼았다.
‘산후조리원’ 회사에서 최연소 임원, 병원에서 최고령 산모 현진(엄지원 분)이 재난 같은 출산과 조난급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거치며 조리원 동기들과 성장해 가는 드라마다. 박하선은 극중 전업주부이자 산후조리원의 여왕벌 조은정 역을 맡았다. 조은정은 이미 쌍둥이를 모유수유로 키운 베테랑 엄마로 조리원에서 초보 엄마들 사이에서 여왕으로 군림하지만 정작 육아 문제, 유명 골프 선수인 남편과의 갈등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산후조리원 박하선 인터뷰. 사진/키이스트
박하선은 ‘산후조리원’을 떠나 보내는 것에 대해 “인생 캐릭터를 만나 정말 행복한 한 달이었고, 조은정을 떠나 보내기가 무척 아쉽다. 좋은 평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대본, 연출, 배우, 제작진 모두 완벽한 작품에 함께 해서 영광이었다. 너무 아쉬워서 시즌 2를 꼭 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자신이 연기한 은정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대해 “우아하고 도도하면서도 웃기고 짠하고 귀엽고 슬프고. 여러 가지 매력과 인간적인 모습이 있는 정말 복합적이고 버라이어티한 캐릭터다. 이 정도로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연기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설명했다.
박하선은 은정을 연기함에 있어서 “대본에 '풀메이크업에 진주 귀걸이를 한'이라는 지문이 있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인물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꾸밀 수 있는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또한 “조리원 복장 안에서 최대한 캐릭터 컨셉을 보여주기 위해 명품 스카프, 개인 소장 헤어밴드, 제가 썼던 아대, 수면양말, 내복 등을 사비로 구입해 활용했다”며 “그리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느낌의 캐릭터여서 '나는 여왕벌이다', '나는 최고다'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산후조리원 박하선 인터뷰. 사진/키이스트
박하선은 극 중 은정처럼 ‘산후조리원’ 촬영 현장에서도 다른 배우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었다. 그는 “극 중 조동(조리원 동기) 멤버 중에 실제로는 나와 열무 엄마 역할의 자혜 언니 밖에 출산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에게 아이 호흡법, 모유 수유 법 등에 관해서 조언도 많이 해줬다”고 밝혔다. 또한 “감독님도 제가 가장 최근에 출산 경험이 있었던 터라 많이 물어보셨다”며 “제가 은근히 꿀 팁이 많다. 실제로 산후 조리할 때 머리가 많이 빠지는데 좋은 발모제도 추천 드리고 했었다. ‘찐은정’이라고 인정해줬다”고 했다.
최근 출산 경험이 있다 보니 박하선은 은정을 연기하면서 유독 공감되고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는 “은정이뿐 아니라, 출연한 모든 캐릭터들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육아 서적도 10권 이상 읽었고, 실제로 육아에 대한 정보가 많았는데 ‘육아 만렙’ 은정이처럼 저도 육아 만렙이었고, 진짜 조리원 내 ‘핵인싸’라는 말도 들었었다. 그래서 더욱 은정에게 공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한 박하선은 은정이 홀로 육아를 감당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공감을 했다. 그는 “오랜만에 외출해도 갈데 없고 생일조차 외롭게 보내는 등 혼자 분투하는 모습들이 너무 애잔했다”며 “은정이가 한때 아이돌 가수의 팬이었을 만큼 열정적이었던 인물이어서 그런지 현실에서 더 아이와 엄마 역할에 대해 집착 아닌 집착을 하고 노력을 한 게 아닌가 생각됐다”고 말했다.
산후조리원 박하선 인터뷰. 사진/키이스트
‘산후조리원’은 그간 드라마에서 보여준 육아의 환상이 아닌 현실을 보여줬다. 더구나 ‘격정출산느와르’라는 단어가 시청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박하선은 “격정도, 출산도 다 알겠는데 느와르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감독님이 느와르 연출을 정말 잘하시더라”고 했다. 또한 “여름에 방송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라. ‘납량 특집’처럼. 마지막까지 ‘여고괴담’ 패러디도 있었다. 대본보다 훨씬 더 느와르스럽게 ‘공포’ 부분 연출이 더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에는 느와르라는 이유를 공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패러디 연기를 하기 위해서 망가짐도 불사했던 박하선이다. 특히 극 중 현진과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무협 액션물을 방불케 했다. 박하선은 오히려 이 시대에 사극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꿈을 이뤘다고 좋아라 했다. 그는 “무협도 칼싸움은 안 해봤는데 해볼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었고, 쌍권총을 쏘는 장면에서도 희열을 느꼈다”며 “개인적으로 ‘천녀유혼’ 팬이라 왕조현을 너무 좋아하는데 닮았다는 반응을 들어서 너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하선은 해당 장면을 촬영하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홀리데이’의 최민수, ‘조커’를 떠올리며 연기를 했단다. 그는 촬영 에피소드로 “나도 모르게 그들을 떠올리며 연기하게 했는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제 표정연기를 보고 너무 웃겨서 ‘컷’도 제대로 못 외쳤다”며 “평소에는 잘 웃지 않으시는 분이라 더 신나게 찍었다”고 했다. 더구나 드라마를 통해 ‘설국열차’ 여왕 분장에 무협 액션 연기까지 정말 다양한 연기를 하게 돼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산후조리원 박하선 인터뷰. 사진/키이스트
카카오TV ‘톡이나 할까’를 통해 박하선은 결혼, 임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기혼, 미혼, 애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능력을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저 또한 능력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으려 많이 노력하고 있다”며 “능력이 아닌 결혼 유무, 자녀 유무가 왜 핸디캡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한 “핸디캡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경력 단절’과 같은 말은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인식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어 용기를 내서 얘기했다”고 ‘톡이나 할까’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언급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경험을 한 덕분에 박하선은 극 중 스튜어디스였던 은정이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고 느끼는 외로움을 더욱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독박육아를 하다 보면 산후우울증도 한번씩들 온다. 저도 출산 후 회복기간 2년여간 일을 하지 못했다. 저 또한 독박육아도 해본 적 있는데 그때의 저의 모습이 그대로 나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힘들었던 시기를 ‘나는 이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일을 하고 있어’, ‘값진 일을 하고 있어. 이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버텼다는 박하선. 그는 “일은 못 하고 있었지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며 “그 시간들 동안 다양한 작품들을 굉장히 많이 봤고, 그런 시간들이 제게는 약이 됐다”고 밝혔다. 박하선은 이러한 시간이 ‘산후조리원’을 하기 위해 지나온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단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산후조리원’을 통해 박하선은 자신이 왜 배우를 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느끼게 됐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라고 제게 휴식기가 주어진 것만 같았다”며 “제 출산경험이 없었다면 이 작품을 못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더 좋아졌고, 잘 맞는다고 느꼈다”고 했다.
끝으로 박하선은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이나 ‘청년경찰’의 경우에는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기분이 들었었다면 ‘산후조리원’은 제게 있어 터닝포인트인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제가 너무 공감을 하고 작품에 임했기에 할 수 있는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며 “많은 사람에게 ‘박하선이 다른 역할도 할 수 있구나’, ‘다양한 잠재력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고, 제 연기의 지평을 넓혀 준 작품”이라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산후조리원 박하선 인터뷰. 사진/키이스트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