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국내 항공업계에서 고액 연봉과 안정된 정년 보장으로 '신의 직업'으로 각광받던 조종사들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항공사들이 신규 채용은 엄두도 못내는 가운데 경력직 채용에서조차 기장급 베테랑 조종사들이 자비로 수천만원대 교육비를 내는 조건으로 입사하는 만큼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이다. 항공업황이 회복되기까지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얼어붙은 조종사 채용 관련 시장이 살아나는 시기는 이보다 훨씬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열린 한 저비용항공사(LCC) 업체의 조종사 경력 공채에서 기장 6명, 부기장 4명을 뽑는데 약 1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자들은 대부분은 대규모 정리해고로 청산 수순을 밟고 있는 이스타 항공 소속 기장·부기장과 중국 등 외항사에서 근무하던 베테랑 조종사들이었다. 

 

경력직 채용에서 경쟁률 10:1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문제는 고참 기장·부기장들조차 자비를 털어 상당한 규모의 교육비를 내는 조건으로 채용 계약에 응했다는 점이다. 보통 기장의 경우 과거 동일 기종의 비행기를 운항했다 해도 각 항공별로 다른 절차나 기준이 있어 1500만 원 정도 수준의 재교육 비용이 들지만, 보통 5년 근속에 따라 소멸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항공업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지난 경력 채용에서는 지원자가 교육비를 선납하는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마치 면장을 가진 조종사가 정식 부기장이 되기 위해 약 3000만 원(737 맥스 기준) 수준의 교육비를 본인 우선 부담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계약 조건도 정규직이 아닌 2년 계약 조건이며, 처우도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다른 기장·부기장들의 45~50% 수준으로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종사자들은 이 같은 채용 방식이 마치 관행처럼 굳어질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조종사는 "코로나로 어느 항공사나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기존에 없던 조건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몰린다는 것을 알고 다른 회사들도 따라서 교육비와 관련된 부분을 조종사에게 전가하는 식의 잘못된 관행으로 계속 가게 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지난 2006년 처음 LCC가 설립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크게 성장했고, 동시에 조종사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더구나 조종사가 고액 연봉을 주는 꿈의 직장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취업준비생, 재직자들이 조종사 채용 시장에 뛰어들었고, 조종사를 양성하는 대학 학과도 기존 2개에서 16개로 늘었다. 이에 지난 2019년 기준으로 국내 민간항공 조종사 내국인 인원은 6286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가 불어닥치며 이미 초과 공급 상태였던 조종사 시장은 한층 더 어려워졌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항공업의 경우 2024년은 돼야 여객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경기보다 늦게 움직이는 고용 시장의 특성상 앞으로 향후 3~5년간의 조종사 채용 시장은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외항사들까지 나서서 국내 조종사에게 2~3억원대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스카웃 경쟁을 벌이던 호시절은 요원해졌다. 

 

박상모 조종사노조연맹 사무처장(진에어노조 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해 조종사 채용 시장은 앞으로 더 이상 양적 성장이 불가능하게 됐고 항공업의 인수·합병, 구조조정, 기재 축소 등이 가시화된다면 국내 조종사의 인원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원자들 입장에서도 자기 적성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지원해야지 조종사는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직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항공업계 지원을 위해 항공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하고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의 경우 법상 180일로 정해져 있던 것을 60일 연장했지만 이마저도 올해 3월이면 끊긴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항공업 종사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 급한 대로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는 한시적인 대책일 수밖에 없다"면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와 같이 인수합병(M&A) 시장 내에서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부실한 기업을 퇴출하는 등 항공 산업의 전반의 체질이 건강해져야 채용 시장도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