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1. 서울 소재 중앙고등학교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학병 독려를 강연하고 글로 남긴 인촌 김성수에 의해 설립됐다. 김성수의 동상이 남았으며, 교가는 학병을 독려한 최남선 시인이 작사했다.
#2. 휘문중·고에는 설립자인 민영휘의 동상이 있다. 민영휘는 1910년 한일 합병 지지 공로로 자작 작위에다가 은사공채 5만원을 받았다. 역시 최남선 시인이 교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3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 인촌 김성수 동상 앞에서 고려대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교내 김성수 기념물 철거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9년 2월26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양대 교원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서울지부가 발표했던 ' 서울 학교 내 친일잔재' 현황의 일부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이라는 시기여서 친일인명사전 등재 인사가 작사·작곡한 학교가 113곳이라는 발표 내용 등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후 사회적 관심은 서울시교육청으로 쏠렸지만 구로중학교 교가를 교체했을 뿐 전반적으로 청산 정책이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급기야 지난해 10월15일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학교 친일 잔재의 청산 진척이 0%"라고 지적하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에 기초해 지적사항 (해결) 작업을 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7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임정 100주년 이후 2년이 흐른 지난달 22일 시교육청이 일선 학교들에 공문을 보내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청산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이번달 초 전교조 서울지부는 "제작년 제안했던 것이 이제라도 진행돼 다행이고 적극 환영하는 바"라고 논평했다.
이에 따라 학교들은 다음달까지 일제 잔재 여부를 확인해 시교육청으로 제출하고, 이후 오는 8월까지 청산 결과를 다시 내게 된다. 청산 결과를 변경한 학교는 연말까지 2차 체출한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서울 내 초등학교는 606곳, 중학교 387곳, 고등학교 320곳으로 모두 1313곳이다.
일제 잔재 기준은 △교가 작사가·작곡자가 일본인 또는 친일인명사전 등재 여부 △욱일기와 유사하거나 월계수 잎 문양이 들어간 경우와 같이 일제 상징을 연상케 하는 교표 문양 여부 △구령대 여부, 동상·흉상·공덕비·송덕비·건물명 등 일제 관련성 여부 △일제 잔재 용어 사용 여부, 공개 장소에 일본인 및 친일인명사전 등재 학교장 사진 게시 여부, 학생 생활규정 등에 일제 시기 수립된 징계 여부 등이다.
특히 용어의 경우 순화 대상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반장·부반장을 학급대표로 바꾸고 훈화를 덕담으로 변경하며, 일왕 충성 의식인 '차렷·경례'를 순화하고 민족 정신 말살의 일환이었던 수학여행·소풍·수련회를 문화탐방·문화체험활동·현장체험학습으로 바꾸는 식이다.
시교육청은 늦어도 이번달 중순까지는 '일제강점기 식민잔재 청산 추진단’을 꾸린다. 10명 이내의 역사교육 학자, 교사, 시민단체 등으로 이뤄지는 추진단은 학교들의 일제 잔재 여부를 판단하고 청산 실행 방식을 자문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그동안 학교에 청산 분위기 조성을 해왔다가 올해에는 추진단이 꼼꼼하게 살펴보고 전수조사를 하는 것"이라면서 "공문에 청산 방식 예시를 담기는 했지만, 전수조사 현황 파악 뒤에 더 자세하게 안내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활규정은 이미 거의 모든 학교에서 바뀌었고, 앞으로 언어 청산이 많이 된다고 본다"며 "최종 목표는 그동안 문제가 된 교가의 작사·작곡 뿐 아니라 강압적인 내용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눈에 보이는 시설물 철거가 가장 힘들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이 관계자는 "특히 사립학교는 석물(돌로 만든 상징) 철거를 원하지 않는다"며 "다른 시도처럼 표지판을 세운다든지 아니면 학교가 원하는 다른 대안을 마련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15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서울·인천·경기 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뉴시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