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중에도 일에 시달렸던 택배회사 운영과장, 대법서 산재인정

업무와 질병 악화 인과관계, 명백한 의학적 증명 아닌 상당인과관계 추단 가능

입력 : 2021-03-11 오후 12:00:0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과로로 입원한 중에도 회사 일을 하는 등 충분한 치료와 휴식 없이 근무한 탓에 병을 얻은 택배업체 운영과장이 대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취소 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서울고등법원에 파기환송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망인의 업무와 사망 원인이 된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크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택배센터 운영과장으로 일하던 40대 후반 A씨는 2014년 9월 단백뇨 진단 이후 추가 검사로 '미만성 막성 사구체신염이 있는 신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하루 연차를 내고 12시간 근무한 A씨는 다음날 복부 통증으로 내원해 '신장정맥의 색전증 및 혈전증' 진단으로 일주일 가까이 입원 치료했다.
 
A씨는 퇴원 직후 3일 출근과 2일 결근, 4일 출근을 이어가며 매일 12~13시간 근무한 뒤 병세가 악화돼 다시 입원했다.
 
입원 기간에도 그는 고객·거래처·대리와 연락을 이어갔다. 업무용 컴퓨터를 병실에 두고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치료가 길어지면서 A씨와 센터장 간 불화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기 휴대폰 메모장에 괴로운 심정을 적고, 수첩에 '산재문의, 인재쪽 질문, 노동부 질의(인신공격)'이라고 적었다.
 
그해 12월 퇴원 후 자택에서 요양하던 그는 이듬해 1월 고열로 다시 입원해 폐렴 진단 후 치료받았으나 2월 숨을 거뒀다.
 
1심은 A씨가 치료 기간에도 업무 관련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은 A씨 질병의 발생 원인을 알 수 없거나 혈액 내 자가항체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고,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의 상태를 급격히 악화시켰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 판결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2심이 업무상 재해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원인에 겹쳤을 경우, 그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수년간 만성적으로 하루 10시간을 초과해 업무를 수행해 왔던 점, 택배센터의 근무환경 내지 분위기 등 제반 사정에 비춰 보면, 이 사건 상병 발병시점을 전후해 망인에게 업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상당히 누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발병 이후 안정·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에도 불구하고 입원 치료 후 하루 정도 쉬거나 입원치료 후 바로 출근하여 업무에 복귀해 평소와 같이 근무하였고, 심지어 입원치료 기간 중에도 업무용 노트북을 이용해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하는 등 업무를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의사 소견을 따르지 않고 업무를 본 이유에 대해서는 "택배센터의 업무부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치료 기간 중 업무 수행은 망인에게 큰 육체적 부담을 주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발병 이후에도 제대로 요양 하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업무·휴직 처리, 상사와의 갈등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다가 다시 단기간 내에 급격하게 악화되어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요인 외에는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여 급격하게 악화될 만한 요인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A씨 업무가 과중하지 않고 폐렴 발병 원인이 개인적 요인에 있다는 원심 판단에 대해서는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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