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은 21일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서 각하 판결했다.
재판부는 쟁점이 된 주권면제(국가면제) 관습법을 이번 재판에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면제에 예외를 국제관습법과 달리 범위를 확대할지, 외교범위를 확대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 지는 국익에 잠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법원이 매우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하면서 예외를 창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고에게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며 "국제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한일합의)'로 피해자 일부가 현금 지원 받은 점도 판단 근거였다.
재판부는 "생존 피해자 상당수가 화해재단에서 현금을 수령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피해자를 위한 대체적 권리구제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해당 합의가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원고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 대통령인 박근혜와 일본 아베 총리 개인 합의가 아닌 국가 간 합의였다"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 구제 수단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후 한국 정부가 화해재단을 통한 피해자 지원금을 일본 정부에 돌려주지 않았고, 해외 대부분 국가가 2차 대전 당시 개인이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면제를 적용한 점, 한국 입법부가 개별 법에서 국가면제 제한 범위를 정하는 입법을 하지 않은 점 등도 국가면제 적용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지난 시간 대한민국이 국내외적으로 기울인 노력과 이로 인한 성과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에 대한 회복으로서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2015년 합의도 고통에 비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로 보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법원은 피고의 실체적인 청구권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2015년 합의로 모두 해결됐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이 사건 법원이 피고에 대한 재판권을 갖는지에 대해 국제 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 정부가 피고와 외교적인 교섭을 포함한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야 한다"고 각하 이유를 재차 설명했다.
선고 직후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이 재판이 잘 나왔든 못 나왔든 간에 나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고 말했다.
원고 대리인 이상희 변호사는 "법원이 왜 있느냐"며 "법원이라는 곳은 입법과 행정에서 보장받지 못한 분들,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이어 "진지하게 법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번 판결을 통해 국제 질서 속에서 인권보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같이 논의를 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피해자 분들과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같은 법원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는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반인도적 행위를 해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원고에 대해 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사진/뉴시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