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서 패소한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을 상대로 한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관련 “국가가 원고들(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납입을 유예하도록 한 소송비용 중 피고(일본)로부터 추심할 수 있는 비용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비엔나 협약 27조에 따라 국내적 사정 및 해석에도 조약의 효력이 유지될 수 있고, 이 같은 경우 강제집행은 확정판결이 실체적 진실과 어긋난다”면서 “이 같은 사정에까지 이른다면 이는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에 국가적 위신과 관련되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등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되며 헌법상의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와도 상충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비엔나 협약 27조는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국내법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체결된 조약의 내용이 국내법과 배치된다고 그 조약의 이행을 상대국에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 관련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위안부 합의, 각국 당국이 이 사건 관련 한 언동 등을 보면 이 사건 추심 결정을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 협약 제 27조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배 할머니 등은 소송구조 제도를 통해 국가에서 소송비용을 지원받았다. 소송구조 제도는 경제적 약자의 소송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로 법원이 소송에 필요한 비용의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1심에서 승소하고 일본 정부가 항소 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일본이 패소하면서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됐고, 한국 재판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금과 소송비용을 추심하기 위해 지난 17일 일본 정부에 '국고의 상대방에 대한 추심 결정(소송구조)'을 내려 공시송달했다.
이후 본안 판결을 했던 재판부 소속 판사가 법원 인사이동 후 재판부가 재구성됐다. 새 재판부는 일본에 대한 강제집행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을 추심하는 등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에 의해 그 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제144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 참석자가 고 김복동 할머니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