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조만간 미국을 향해 역대급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삼성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물 보따리'를 내놓는다면 미국과 각종 의제를 놓고 머리를 맞댈 우리 정부의 어깨도 한층 더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다음 달 21일 한미정상회담 전후로 170억달러(약 19조600억원)에 이르는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과 애리조나를 비롯해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텍사스 주 오스틴이 유력 후보지로 뽑히고 있다.
업계는 지난달 백악관 반도체 관련 화상 회의에 참석한 삼성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반도체 투자를 요청받은 만큼 이에 화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이 기업들에 직접 투자 요구를 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번 투자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미국을 향해 반도체 공장 추가 투자는 물론 차량용반도체 등의 인수합병(M&A) 소식 등을 연달아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중국에 맞서 자국의 '반도체 굴기'에 힘을 쏟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성향을 생각할 때 이번 한미정상회담 테이블에도 반도체는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회담 전후로 투자 확대를 발표한다면 정상회담도 한층 순조로운 흐름을 탈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시스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경쟁상대인 중국을 자신들이 직접 때리기보다는 동맹들을 적극적으로 '방어막'으로 활용하는 우회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 정부보다 동맹들의 친밀도를 판단하려는 빈도가 높아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삼성의 투자 여부는 단순히 기업이 돈을 내놓는다는 차원을 넘어 한미동맹 강화의 직접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삼성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투자를 요구받은 인텔과 대만의 TSMC은 미국의 '반도체 동맹'에 빠르게 합류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는 애초 미국 애리조나에 1개의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가 최대 6개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3일 인텔은 미국 뉴멕시코주 공장의 생산 능력 제고를 위해 35억달러(약 4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경쟁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투자 관련한 삼성의 부담은 한층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15.5% 줄어들었지만, 1분기 9조7000억원 시설투자비 가운데 8조5000억원을 담당하는 등 강도 높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비해 첨단공정 증설 등에 투자를 집중했고 파운드리에도 힘을 쏟았다. 삼성의 국내외 반도체 투자 기조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파운드리 경쟁자인 TSMC까지 미국 투자 확대를 발표한 만큼 삼성 입장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에 이에 상응하는 투자 계획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정상회담 직전에 투자 발표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렇게 되면 삼성으로 인해 우리 정부가 미국에 면이 서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