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이준석 돌풍이 무섭다. 처음 당대표 출마 선언할 때만 하더라도 신진 세력의 정치적 도전 정도로 평가되었지만 1차 예심 결과 이후 반응이 달라졌다. 당심과 민심을 각각 50%씩 반영한 컷오프 심사에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41%로 2위를 차지한 나경원 전 원내대표보다 12%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다. 국회의원을 여러번이나 한 중진들을 앞지른 결과다.
일각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의 허리케인급 바람을 잠시 스쳐지나가는 수준으로 폄하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지난 10여 년 간 현실정치를 해온 이 전 최고위원이 지금에서야 각광받는 이유는 우연이 아닌 'MZ세대의 혁명'이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2030 MZ세대는 더 이상 다른 세대의 들러리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기성 정치인들은 2030 젊은 세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적용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늘 선거때 뿐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MZ세대의 현안은 다시 뒷전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이준석이라는 인물이 완전무결하고 정치적 이상형이라기 보다 청년 세대의 대변인 역할을 기대하는 셈이다.
적어도 지난 10여년 간 이 전 최고위원은 각종 회의 자리나 방송에서 또래 집단의 고민을 토로해왔다. 지금까지도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2030 MZ세대의 소외'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청년 일자리 부족, 부동산 가격 폭등,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어려움, 가상화폐 투자 리스크 등 MZ세대의 희망을 가로막는 사회 현실이 '이준석 돌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준석 돌풍은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총장 바람보다 더 강하다. 우선은 '정치의 변화'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돌풍은 여야 모두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득권 정당과 정치인의 타성에 젖었던 여야 정치인들은 이준석에 열광하는 여론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함께 당권에 도전하고 있는 중진들은 이 전 최고위원을 '유승민계'라고 폄하하고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 몇몇은 '국민의힘 종말론'을 강요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당선되면 국민의힘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려움 때문이다. 이준석 돌풍이 기존 정치권이 누려왔던 기득권의 변화 즉 '정치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은 지지율이 높을 뿐이지 당장 정치적 변화를 견인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이준석 돌풍이 윤석열 바람보다 더 센 이유다.
두 번째로 이준석 돌풍이 윤석열 바람보다 무서운 이유는 '세대 반란'인 까닭이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2030가 주장하는 '세대 교체' 요구는 표면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한창 일해야 하는 2030대의 사회 진출 기반이 무너지고 정작 기성 세대에 밀려 '계층사다리 붕괴' 참상을 지켜보며 2030 MZ세대는 똘똘 뭉치고 있다. 재보궐 선거를 통해 집단적 세대 결집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2030세대는 민주당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청년의 삶'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 2030세대는 집권 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이 전 최고위원은 예선의 국민여론조사에서 51% 지지를 얻었다. '세대 반란'이 전 세대를 걸쳐 뜨겁게 나타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현 정부와 검찰 갈등을 통해 상당한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었지만 '세대 반란'이라는 이슈를 주도해갈 정치적 원동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전 최고위원이 윤 전 총장보다 두려운 세 번째 이유는 '현실 반영'이다. 2030세대 뿐만 아니라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이준석 돌풍'의 실체다.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정치권에 '다른 목소리'는 곧 현실의 반영이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고 요동치는 주식시장에 투자자들은 몸서리치고 있다.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인 이더리움, 도지코인 등 가상화폐 투자에 나선 2030 MZ세대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만 반복되어 온 정치권과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후보는 정답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경제문제, 사회문제, 남녀문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로부터 공감을 못 받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현실 반영'이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과 보수층 지지를 받는 유력 대선 후보로 성큼 올라섰지만 민생 현안에 대한 자신의 방안이나 해법을 내 놓은 일은 전무하다.
정치인에 대한 관심도나 영향력을 측정할 때 빅데이터 분석의 언급량을 확인하게 된다.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언급량은 당권 경쟁후보들보다 훨씬 많고 윤석열 전 총장의 언급량과 필적하거나 더 많다고 한다.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이재명 지사,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총리 등은 윤 전 총장을 최대 라이벌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윤 전 총장보다 이준석 돌풍이 더 무서운 존재가 되고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insightkce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