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광폭행보가 놀랍다. 싱 대사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8번째 주한 중국대사로, 지난해 1월31일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신임장을 받았다. 싱 대사의 행보는 비교적 조용한 외교에 나섰던 역대 중국대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중 간 현안이 생기면 우리 언론에 직접 출연해서 자국의 입장을 주저 없이 밝히고 있다.
싱 대사는 4·17 재보궐선거가 끝난 직후 'TBS 뉴스공장'에 직접 출연, 한중 현안은 물론 김치종주국 논란이나 중미관계에 대해서 거침없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26일엔 MBC에 출연,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대해 "주한대사로서 관심 있게 봤다"면서도 "중국을 겨냥한 부분이 조금 있는 것 같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지적했다.
싱 대사는 서기관과 참사관, 차석공사(대리대사)를 북한에서 역임하고 대사는 서울에서 근무하게 된 한반도통이다. 일찍부터 평양으로 유학을 가서 조선어를 전공했으며 외교부 직원으로 들어간 직후인 1988년 첫 해외 근무지가 평양이었다. 한중수교가 되자 1992년부터 3년간 서울에 근무하면서 양국 외교관계의 기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싱 대사는 외교관 생활 대부분을 서울과 평양에서 보낸, 지금껏 봐 온 주한 중국대사들과 달리 우리말을 가장 유창하게 하는 중국대사다.
싱 대사 이전의 중국대사들은 언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싱 대사의 전임인 추궈홍(邱國洪) 대사 정도가 공개적인 대외 활동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싱하이밍은 달랐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한국에서의 활동에 거침이 없다. 대사로 부임한 이래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박병석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을 다 만났다. 여야의 중진 국회의원,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주요 인사들도 수시로 만났다. 대학 총장과 주요 언론사 대표, 서울시장, 강원도지사 등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도 가리지 않았다.
유창한 한국말로 생방송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TBS 뉴스공장과 MBC 뉴스, KBS오 YTN 등 친정부성향 매체에 집중 출연, 사드 보복문제, 한복과 김치종주국 논란 등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조목조목 해명하기도 했다. 얄밉지만 싱 대사의 이런 광폭행보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동시에 민간외교까지 아우르기도 하는 '주재국 대사'의 본분을 가장 충실히 실행하는 모범적인 사례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이 주요국 대사를 선발하는 기준은 상대국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상대국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으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상대국과 소통할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러다 보니 주한 중국대사는 북한 문제와 관련한 남북한 핵심 관계자들을 직접 접촉한다는 점에서 자칫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도 있다. 제3대 주한 중국대사를 역임한(2001년 7월10일 ~ 2005년 8월19일) 리빈(李濱) 대사는 귀국 후 북한관련 정보를 우리 측에 넘겼다는 간첩혐의로 체포돼 곤욕을 치렀다. 그 여파로 후임 대사들도 상당기간 조심스러운 행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싱하이밍 대사의 전방위적 보폭은 '리빈 악몽'을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주재국 대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화이트요원'(간첩)의 우두머리다. 반중정서가 예사롭지 않은 요즘 중국대사가 '친여'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건 국내의 반중정서 누그러뜨리기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다. 사드 보복에서부터 최근의 김치·한복 논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문화공정에 대한 반중정서는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정부의 친중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고 강원도의 차이나타운 사업은 청와대 국민청원 대상이 됐다. 배후의 저우위보(周玉波) 인민망 한국지국장의 수상쩍은 행보는 공작활동을 하는 스파이의 그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싱하이밍과 저우위보의 적극적인 국내 활동은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외교활동이기도 하다. 중국어를 못한다고 해서 주중 한국대사가 대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국과 별다른 인연도 없으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주도하다 경질된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중대사로 가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게 없다. 시진핑 주석이나 정치국 상무위원 등 실세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중국 각급 주요 지도자와 인민일보 등 각종 매체, 중국의 삼성이라는 화웨이나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는 뉴스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중대사는 청와대 퇴직자나 퇴임교수가 가서 소일하는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장하성 대사가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 정부의 남은 임기만이라도 역량 있는 중국 전문가를 주중대사로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