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헌법학자들은 현재 여야의 정치적 셈법으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신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기본권 강화를 중심으로 한 개헌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헌법학회는 1일 국회에서 국회입법조사처와 함께 '국민통합과 헌법개정 학술대회'를 열고 민주적 개헌과 헌법개정 방향 등을 논의했다. 학술대회에 참여한 학자들은 한국 역사상 개헌은 권력자에 의해 주도돼 왔음을 지적하며 이제는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엔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국민적 토론의 장을 열기 어렵고,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가지면서 특정 정치적 의사만 반영돼 국민적 합의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부형태 변경 개헌은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여야가 개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의원내각제로 변경할 경우 야당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선거를 치루지 않고 국회 의석 과반을 점한 정당이 정부구성권을 갖는 정부형태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여당이 단독 정부 구성권을 가지게 되는데, 야당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이원집정부제로 변경할 땐 사회적 갈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봤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제도로, 여당에서 책임총리를 뽑아 정부와 국정을 운영한다. 이 제도 하에서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게 될 경우 현재 여당과 조화를 이룰 수 있지만, 야권 후보가 승리하면 권한갈등, 국정운영 장애 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결국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변경은 내년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현재 여당이 가지고 있는 정부 권력을 연장하려는 시도로 의심받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광석 연세대 교수는 "그동안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독자적인 기본권으로 인정된 기본권이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정보공개청구권이 개헌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헌법을 개정해 사형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자고 덧붙였다.
한편 헌법학자들은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기본권 강화를 중심으로 한 개헌은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국헌법학회가 학회 회원 93명에게 지난 14~22일 온라인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헌법개정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6.9%에 이르렀다. 개헌에 찬성하는 이유는 '새로운 기본권 등 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답한 응답이 54.8%로 가장 높았다.
국회에서 1일 열린 '국민통합과 헌법개정' 공동학술대회에서 김선택(오른쪽) 고려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단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