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거세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격리 장병에게 제공된 '오징어 없는 오징어국' 논란이 가시기도 전에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군참모총장은 '책임 통감'이라는 말과 함께 옷을 벗었지만, 매일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 앞에 국민들은 놀란 입을 미처 다물 시간이 없다.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반복에 있다. 이번 사건은 8년 전 육군 오 대위 사건의 판박이다. 2013년 여군 대위가 직속 상관 소령의 강체추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통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것까지 같다. 3년 전에는 해군 부하 장교 성폭행 시도하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여군들의 헌신이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상관에게 치욕을 당하고 있다.
"당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진행이며, 반복되고 있다는 소리다. 오 대위도 이 중사도 예전부터 있었고, 안타깝지만 오늘도 어디엔가 있을지 모른다. 군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고, 전담반을 조직하고, 엄중한 인식과 강력한 처벌을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모든 것이 허언이었다는 점을 다시 증명했다. 비극이 발생하고 위원회를 만들고, 누군가 옷을 벗고, 다시 비극이 만들고, 위원회를 만들고 또 누군가는 옷을 벗는다.
지금 정부와 국회에서는 여러 가지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1심 군사재판을 국방부 장관 소속 군사법원에서 하고,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해 민간법원이 항소심을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장관과 군 참모총장 소속 검찰단을 설치한다는 내용도 있다. 군인권보호관 제도 도입 목소리도 다시 나온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은 역시 이미 수년 전부터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됐던 것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참여정부에까지 이른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책 마련과 재발방지책을 말했다. 책임자 엄벌도 강조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누가 감옥에 가고, 직책을 내려놓는다고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책임질 수 없는 책임들만 늘어난다.
결국 군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폐쇄적인 군 문화는 결코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전의 상실 운운하지 말자. 군 기강을 입에 담지 말자. 유족과 국민이 겪은 슬픔과 실망에 비교하면 그조차도 사치라고 생각한다. 군은 수십 년 동안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인권 개선의 방안으로 내놓은 것 중 하나가 육군훈련소 훈련병 흡연 허용 검토가 작금의 우리 군의 인권 개념 수준이다.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좋다.
문장원 기자 moon334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