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시장 투자가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배드 이즈 굿(Bad is Good)’. 경제 상황이 부진한데 주가·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한다는 논리에서 일컫는 용어다. 이땐 빚의 속어인 소위 ‘땡빚’을 내더라도 투자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정부에서 막대한 재정을 뿌리고 저금리 기조까지 장기화라면 금상첨화다. 바로 팬데믹(Pandemic) 창궐로 인한 경제상황이 그랬다.
정부는 올해 경제전망을 4.2% 성장까지 예측하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게 반등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마냥 축배를 들 수도 없는 일이다. ‘부채중심의 성장’에 놓인 탓이다.
이른바 ‘영끌’, ‘빚투’로 올해 1분기 말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인 1700조원을 돌파했다. 기업대출도 1400조원을 넘어서면서 가계와 기업의 빚이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도 위기 전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회복을 예상하면서도 취약부문 보강을 위한 정책노력의 필요성엔 부정하지 않고 있다. 부채중심의 성장은 그야말로 ‘빚잔치’다.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Price to Income Ratio)은 주요국 중 우리나라가 1년 전보다 가장 높은 13%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독일·영국 등의 상승률보다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집값 상승을 주도한 서울은 1분기 PIR이 17.8배로 분석됐다. 17년 동안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17.8년이 걸린다는 의미다. 가격 상승세가 비정상적이라는 얘기다.
누적된 가계부채는 외부 경제 충격으로 3년 뒤 -2.2%의 성장률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때문에 통화당국으로서는 꺼내든 카드가 금리정책이다. 이미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는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잠재적 요인들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을 지목해 왔다.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킬 정도의 자산버블과 가계부채에 대한 경계감이 내제돼 있다.
금리인상에 대한 시그널을 내비치고 있는 이주열 총재의 입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금리인상 소식과 달리 우리나라의 양상은 다르다.
심화된 양극화로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산버블을 막고 가계부채 관리에 고삐를 죈다고 하나 금리인상은 가계부채 이자부담으로, 주거비용 증가 등 저소득층 자산위협으로 연결된다. 이는 또 다시 소비 하락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수출호조와 가계부채 양상만 보면 저금리, 저성장, 저물가로 이어져온 그 동안의 경제 사정을 벗어나 금리인상 정책은 사실 당연함이다.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시사한 이 총재의 표현도 ‘금리 정상화’였다.
문제는 금리인상으로 어려운 서민경제가 타격을 받기 때문에 통화정책과 함께 중요한 것이 실물경제 보호책인 재정정책이다. 보편이냐 선별이냐 정쟁하는 사이 코로나발 충격으로 문을 닫은 자영업자들은 이미 저소득층으로 추락했다. 은행권 대출도 어려워 비제도권의 금융에 손을 벌린 이들이 부지기수다.
2차 추경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은 이중 고통에 놓일 이들을 위해 진정 무엇을 해야 할지 ‘배드 이즈 굿’이 되길 간절해본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