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지나치게 인간 중심인 법 체계를 바꾸려면 법조인들의 관심이 많아져야 해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도 많이 생각하고, 수익과 연결되는 연구 용역 기회도 만들려고 합니다."
지난 1일 <뉴스토마토>가 서울 은평구에서 만난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공동대표는 육아휴직 상태였다. 그러나 자신이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에 대해서만 휴직 처리를 하고, PNR 활동은 일부 지속하고 있었다.
서 대표가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법대 1~2학년 시절 미국에서 소를 기계로 도살하는 영상을 본 것이었다. 서 대표는 "죽는 장면만 봤다면 잔인하고 슬프고 불쌍하다는 감정만 들었을텐데 도축업자도 보였다"며 "소들은 극악의 고통을 표현하는데도 도축업자는 무감각해 너무 기분이 이상했다"고 회상했다.
사법시험 공부 때문에 동물단체 활동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보고, 블로그 활동과 서명 운동에 참여했으며 사법시험 이후에는 봉사활동까지 갔다. 법무법인 2년차에는 약자에 반하는 법적 조언을 해주는 일을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로 뛰쳐나왔다. 이후에는 홀로 개업해 수입 없고 운영비만 나가는 일상에서 수 개월 버티기도 했다.
지난 2015년 1월 서국화 변호사가 서울 중구 서소문로 환경재단에서 열린 영장류 동물 쇼 근절을 위한 '프리 오랑(Free Orang) 프로젝트' 출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7년부터는 뜻이 맞는 변호사들과 함께 PNR을 만들어 동물권 및 환경 활동을 해왔다. 대표적으로는 '예방적 살처분' 불복에 대한 법적 조력이다. 2017년에는 전북 익산시에 있는 참사랑농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고, 올해에는 경기 화성시 소재 영농조합 산안마을이 행정심판을 제기했다가 결국 살처분을 수용했다. 정부가 살처분 대상 농장이라는 이유로 달걀 출하를 막자 조합원 사이에 반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참사랑농장과 산안마을 모두 동물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활동하는 복지농장으로 인증한 바 있다.
서 대표는 "살처분에 불복하는 농장들의 경우 주변 농장들이 다 살처분해 감염 위험이 제거되면서 살처분할 이유가 없었다"면서 "행정 기관은 '주변 농장도 했다'고 하지만, 그런 형평성·보복의 논리가 과연 생명권보다 중요하느냐. 죽일 아무런 이유가 없고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동물권 보호 이슈를 정치권에 공론화 하려는 시도도 했다. 지난해 총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정책 발표 내용 가지고 수의사단체에서 연락이 오는 등 난리가 나면서 '정치인이 되면 기성 정치인들처럼 동물법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용이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며 "정치인이 돼야만 동물권 신장을 잘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음에 출마할지는 아무런 기약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PNR이 매진하는 분야는 반려동물 생산업자와 판매업자를 일치시키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다. 생산업자가 자신이 번식시킨 반려동물만 팔 수 있고, 중개와 알선은 금지하는 내용이다.
지금은 생산업자가 최종 소비자와 접촉하지 않고 경매를 통해 과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서 대표 지적이다. 판매업자는 수익을 이유로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면역력이 생기지 않고 사회화가 덜 된 새끼를 공급한다. 이런 반려동물들은 결국 질병에 잘 걸려 소비자가 학대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서 변호사는 "보호자 책임을 면책할 수 없지만 현재 판매 체계는 학대 원인을 제공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동물보호법의 구성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품고 있다. 다른 법 체계를 따랐다면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예외를 늘어놓아야 하지만, 지금의 동물보호법은 금지되는 도살 방식과 허용되는 방식만 적어놓고 대전제를 적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물권을 인권 뒤로 미루지 않는 사고 방식은 가족의 지지를 얻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서 대표는 "노동 전문 변호사인 남편은 '노동자가 인간답지 못하게 사는데 동물을 얘기하느냐'는 식으로 반응했다"면서 "고기를 안 먹는 제 모습을 지켜보고 대화를 거듭하면서 지금은 많이 공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 대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법조인들의 관심 재고다. 동물이 스스로 소송을 제기하고 자신을 대변할 수 없기 때문에 법조인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 역시 사람이 소송당사자가 되더라도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소송을 낼 수 있지만 환경을 보전해달라는 소극적 소송은 낼 수 없어 적극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 변호사는 이어 "돈이 안되다 보니 개선에 대한 법조인들의 관심이 많지 않다"면서 "변호사부터 시작해 법조인이 많이 관심 가질 수 있게 콘텐츠를 많이 생각해내고, 수익과 연결될 수 있는 연구용역이라든가 활동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고 미래 구상을 밝혔다.
지난 1일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공동대표가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