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전기차 시대의 티핑포인트(폭발적 유행)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잊을만 하면 터지는 화재 사고에 관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산업계와 정부가 나서서 배터리·배터리 관리시스템(BMS)·소프트웨어(SW) 문제 등을 화재 원인으로 꼽으며 자발적 시정조치(리콜)도 진행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화재 원인 규명만이 전기차 신뢰를 회복할 유일한 길인만큼 배터리·완성차 업체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쉐보레 볼트EV 2차 리콜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리콜 대상 차량에는 LG에너지솔루션(분사 전
LG화학(051910)) 배터리가 탑재됐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최근 화재가 발생한 차량 조사 결과 특정 배터리에서 화재 위험성을 높이는 '드문 제조 결함'이 발견됐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한 배터리 셀을
LG전자(066570)가 모듈화해 납품하는 과정에서 결함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볼트EV 리콜이 처음 진행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당시 GM은 2017~2019년식 차량 약 6만9000대를 리콜하면서 배터리 충전량을 90%로 제한하도록 SW를 업데이트했다. 하지만 리콜을 실시한 차량에서 또 화재가 발생하자 두 번째 리콜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GM은 리콜과는 별도로 지난 4월 개발한 배터리 이상 작동 여부를 검진할 수 있는 어드밴스드 온보드 진단(Advanced Onboard Diagnostic) SW 설치를 권고했다.
전문가는 이번 GM과 LG의 조치에 대해 화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내다봤다. 제대로된 진단이 부재한 상황에 나온 대책은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팩 화재 징후 예측 진단의 경우 아직 성공 사례가 없고 관련 기술로 '에너지 AI'가 종종 언급되지만 아직은 뜬구름 잡기의 마케팅 포인트일 뿐"이라며 "배터리 관련 신산업이 커지며 예측 진단 기술 개발에 대한 개발 요청과 문의는 많지만 아주 어려운 기술로 GM의 접근 방법도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18일 충남 보령의 한 펜션에 주차해 둔 현대자동차 코나 EV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보령소방서
완성차·배터리 업계의 후속 조치에도 소비자들의 불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내외 화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대차(005380) 코나EV의 경우 전량 리콜을 실시했지만 지난달 리콜 대상과는 무관한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코나 차량에는 볼트와 마찬가지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탑재됐다. 리콜 결정 당시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는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셀 제조 불량을 지목했다. 당시 대부분 이차전지 전문가들은 발화점이 배터리라고 해서 화재 원인을 배터리 문제로 단정짓기에 무리가 있다 지적했으나 기술적 결함을 시정한 뒤 판매된 차량에서 또 불이 나면서 코나 화재 건은 미궁에 빠졌다.
전기차 화재 원인과 관련해 밝혀진 것은 아직까지 아무 것도 없다. 국토부와 KATRI가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불량셀을 이용한 화재 재현 실험 및 BMS 충전맵 로직 오적용에 따른 화재 가능성을 분석하고 있지만, 전기차 화재의 경우 대부분 완전 소손이 일어난 경우가 많아 원인 규명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는 "결정적인 원인은 찾았다 보기 어렵고 영향 인자로 추정되는 걸 계속 제시하는 중이지만 영향 인자와 화재와 연관성을 전혀 제시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이론적으로는 ‘안전마진 부족에 기안한 진행성 불량’이 가장 유력하고 과방전·과충전 등 배터리를 발화시킨 가혹 조건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 마진은 배터리의 안전적 충·방전 성능 유지 및 수명 확보를 위해 충방전시 사용하지 않고 남겨두는 안전 확보 구간을 지칭한다.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한 배터리·완성차 업체의 적극적인 협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현재 연구개발(R&D) 인력을 분산해 화재 원인 규명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서도 불이 나긴 하지만 연속적인 전기차 화재로 배터리에 대한 불신이 커져 가면서 K-배터리 전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스럽다"면서 "아무리 원인 규명이 어렵다고 해도 앞서 발생한 화재 원인에 대해 적어도 제조사가 나서서 설명하지 못한다면 완성차 업체와의 전략적 협력도 앞으로 점차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