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한나 기자] 친일 행각을 벌였거나 내란·외환 죄로 국가에 피해를 준 이들이 사후에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으로 친일 인사 이장이 논란인 데다 반란·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는 국가장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씨를 국민 혈세로 치러지는 공식 장례 절차인 국가장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가장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지난 19·20대에 이어 21대에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들 사후 국민분열을 유발하기 전에 법 개정을 통한 불가 방침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생전 행적을 두고 친일 시비가 일었던 인사들과 내란·수괴 등 혐의로 대법원 판결이 확정돼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전두환·노태우씨의 국립현충원 안장 문제를 둘러싼 국민 갈등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우선 순국 78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면서 현충원 재정비사업 추진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이 만장 상태여서 홍 장군을 어쩔 수 없이 대전현충원에 모셨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현충원의 장군묘역은 1996년에 공식적으로 만장 상태다.
홍 장군 유해 위쪽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묻혀 있는 만큼 같은 공간에 안장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현충원에는 유공자뿐만 아니라 간도특설대 출신 고 백선엽 장군, 일본 밀정으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김창룡 전 특무대장 등 친일 인사도 함께 묻혀 있다.
시민단체들은 늦게라도 친일파 청산이 역사 바르게 세우기의 첫걸음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은 묘를 파내는 것은 반인륜적인 것이라며 과거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매년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국립묘지법 개정안은 한 걸음도 진전이 안 되는 상황이다.
전두환·노태우씨의 국립묘지 안장도 마찬가지다. 국가보훈처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내란죄, 살인, 강도 등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 받은 경우 안장배제 사유가 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면법에서는 "형 선고의 효력으로 인하여 상실되거나 정지된 자격을 회복한다"고 돼 있어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무엇보다 전두환·노태우씨 모두 현행 국가장법에 따라 20억원의 국고지원으로 치러지는 국가장 대상이다. 전두환·노태우씨는 1996년 대법원에서 군사반란 등 죄명으로 각각 무기징역과 17년형이 확정됐고, 2006년 12·12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서훈이 취소된 바 있음에도 현행법은 전현직 대통령이라는 대상자 규정만 있을 뿐 제한 규정은 없어서다.
법안 개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이 발의했지만 자동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가칭 '전두환 국가장 배제법'을 지난해 6월 대표발의했지만 여전히 상임위 계류 중이다.
자동폐기되거나 상임위에 여전히 계류중인 이유는 여야 모두 시급하게 통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올해는 코로나19 소상공인 지원법 등 긴급 처리 법안들에 우선순위가 밀렸다. 또 민주당 조차 당론으로 이 법을 삼고 있지 않아 처리가 더딘 데다 관련 부처에서도 법적 근거에 따라 행정을 집행한다는 입장이어서다.
하지만 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시기적 당위성은 형성되고 있다.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이 열렸지만 재판부는 고령의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을 승인해준 상황이다. 그는 지난 13일 입원해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고 25일 퇴원했다.
이날 법안 촉구 필요성에 대한 기자회견을 연 조오섭 의원은 "5·18 정신이 헌법전문에 들어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며 "국가장 배제법에 대해 신속히 협의와 본회의 의결로 추가 논란이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달2일 예결위를 통해 중앙부처에 국가장 배제 문제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는 등 책임감을 갖고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언제까지 미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논의를 시작하지 않을 경우 현행법상으론 국가장으로 치러야 하는 만큼 국민들 사이에선 '국가장 찬성’과 '국가장 반대' 의견이 극렬하게 대립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김영훈 사단법인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대법원 판결로 이미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는데 국가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피해자와 가해자 성격을 벗어나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 국가장은 반대할 텐데 유족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어 "호국영령들에게 진정한 사과라도 하면 검토라도 하겠지만 항소심 재판 중에도 강원도에서 골프 즐기며 여전히 진정한 사죄가 없는데 국가장을 현재 찬성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애매모호하게 논쟁적인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어서 법안으로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전직 대통령 예유가 박탕당한 데다 유족은 물론 국민들은 더더욱 용납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미흡한 법은 재개정이 확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친일 행각을 벌였거나 내란·외환 죄로 국가에 피해를 입힌 이들이 사후에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전두환씨가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받은 뒤 부축을 받으며 9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법원을 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한나 기자 liberty0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