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공식 제안한 '종전선언'에 북한이 신속하게 긍정 메시지를 내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재가동되는 모양새다. 다만, 북측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선요구하면서 바이든 미 행정부의 결단에 따라 완급이 조절될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장기간 지속돼 오고 있는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공식 제안한 ‘종전선언’에 북한이 신속하게 긍정 메시지를 내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되는 모양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5월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다. 사진/청와대
이는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시기상조'로 평가절하한 지 불과 7시간 만에 나온 메시지다. 남측 언론이 리 부상의 담화를 '종전선언 논의 거부'로 해석하자 급히 톤다운하며 대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리 부상은 미국을 향해, 김 부부장은 남측을 향해 서로 다른 어조의 메시지를 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다만, 김 부부장 역시 "종전이 선언되자면 쌍방 간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지독한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며 미국의 정책기조 변화를 요구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청와대는 "대화의 길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라고 긍정 평가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KBS 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북한은 '적대시 정책 폐기가 먼저'라는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조건이 붙어있다는 것은 조건 충족을 위한 대화와 협의 진행이 전제"라고 해석했다.
미국 측은 신중한 분위기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22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 입장'을 묻자 "북한과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국방부 대변인이 "종전선언 논의에 열려 있다"며 여지를 남긴 답변보다 더 원론적인 언급이다. 물론, 이를 놓고 협상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북·미 가 '종전선언'을 매개로 대화 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의힘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반도에 부는 훈풍이 자칫 '북풍'이 돼 내년 3월 있을 대선과 정권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높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준석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으며 성과가 없었다"며 "(문 대통령 남은 임기를 감안하면) 기간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무리한 제안을 하는지 야당으로서 강하게 비판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그는 "미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문재인정부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섣부른 정치적 행보, 대외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해 상당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과연 대한민국 정당인지 의심스럽다", "'대선 전에는 종전선언 하지 말아달라'고 읍소하는 것인가"라는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문 대통령도 전날 미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공군1호기에서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야당 반응을 보면 '종전선언에 대해 참 이해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어 "종전선언은 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과 무관하며, 평화협상 입구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결국 북한도 대화와 외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고 희망을 드러냈다.
제76차 유엔총회와 하와이 순방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공군 1호기 회의실에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