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최병호 기자] 국세청 산하 일선 세무서들이 '대민 창구'로 운영하는 세정협의회가 본연의 뜻과는 다르게 '로비 창구'로 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정협의회 민간 회원들은 관할 세무서로부터 세무조사 유예, 세원관리 등의 특혜를 봤고, 세무서장은 각종 민원을 들어준 대가로 퇴직 후 1년간 고문료 명목으로 답례를 받았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고문료 지급은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실 신진영 비서는 5일 "서울 종로세무서 세정협의회 회원인 김모 보령약품 대표로부터 '고문료 지급'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며 해당 녹취록을 <뉴스토마토>에 제시했다. 고문료가 사후뇌물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본지가 제보자로부터 확보한 종로세무서 모 간부와의 대화 녹취록에는 "세정협의회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관행적으로, 사실은 사후뇌물 맞다. 그런데 그것을 터치를 못하는 것"이라는 실토가 나온다. 그러면서 "세정협의회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사실 서장들의 사후뇌물, 공공연하게 다 아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또 "세정협의회는 서장 업무고, 서장 영역이라 (세무서 내)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는 것조차 금기시돼 있다. 명단조차도 보자고 말을 못 한다"고 기록돼 있다.
본지가 입수한 국세청의 '서울 소재 세무서별 세정협의회 명단'(21년 8월26일 기준)을 보면 27곳의 서울 일선 세무서가 운영하는 세정협의회 민간 회원은 509곳이다. 세무서 1곳당 평균 19곳이 참여하는 세정협의회를 두고 있으며, 종로세무서 또한 19곳으로 같다. 다만, 제보자는 "종로세무서의 경우 비공식적으로 관리 중인 곳들까지 포함하면 40곳 이상"이라며 "올 상반기 기준 1곳당 최소 월 50만원, 많게는 월 200만원이 고문료 형태로 전직 종로세무서장에게 지급됐다. 1곳당 평균 100만원만 잡아도 월 4000만원, 연간으로 치면 4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또 "이들 중에는 평소 회계 처리를 위해 세무법인과 계약한 곳도 여럿 있는 데다, 한 곳은 대형 세무법인임에도 수천만원의 돈을 전직 서장에게 일회성으로 지급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굳이 전직 서장 출신의 세무사에게 따로 고문을 맡길 필요가 없었던 곳들이란 설명이다.
김두관 의원실이 본지에 제공한 서울 강남 소재 세정협의회 민간 회원과의 녹취록을 보면 "고문료 내냐"는 질문에 "네. (전직)서장들은 (월) 100만원 정도, (전직) 과장들은 한 50만원 정도. 대신 룰이 있다. 1명당 1년 하고 끝난다. 전국이 다 그렇다"며 고문료 성격에 대해서도 "이게 사실은 삥 뜯기는 거잖아요. 전관예우. 그리고 세무조사가 있을 경우 도움을 받으려는 측면이 있다. 보험 성격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아무래도 (조사가) 부드럽고 쉽게 되니까. 담당자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조사가 빡세면 그 스트레스도 무시 못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경기 동부 소재 세정협의회 민간 회원도 "월 50만원씩 고문료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 공무원이 퇴직 뒤 세정협의회 소속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00산업의 경우 2014년 3월 서울 잠실세무서로부터 기재부장관상을 받고 이듬해 6월 이모 잠실세무서장이 퇴직하자, 시차를 두고 2018년 3월 그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00산업은 잠실세무서 세정협의회에 가입했다. 국세청이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기재부장관상의 경우 3년간 세무조사 유예 및 납세담보 면제, 무역보험 우대 외에도 공항출입국 우대, 의료비 할인, 대출금리 등 금융 우대,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입찰 적격심사 시 가점을 부여하는 적격심사 우대 등의 파격적 혜택이 따른다. 이에 대해 김 의원실은 "본인이 관할 내 기업에 상을 주고, 상을 준 곳에 사외이사로 들어간 경우"라며 "무엇보다 기업 입장에서는 3년간 세무조사 유예는 매우 매력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에서도 세정협의회를 둘러싼 비리 사건이 있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김모 해남세무서장은 세정협의회로부터 고가의 선물세트를 수수한 혐의(김영란법 위반)가 국무총리실에 적발돼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로부터 1차 조사를 받고, 현재 국세청 감사담당관실로 사건이 이첩됐다. 황모 전주세무서장도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같은 절차를 밟았다.
2020년 9월15일 김대지 국세청장이 정부세종2청사에서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화상으로 연결된 각 지방국세청 직원들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보자는 현역 기자로, 국세청 세정협의회 비리를 6개월 가까이 추적한 케이제이타임즈 소속 견재수씨다. 그는 자신의 신분 공개와 국정감사 증인 출석에 동의했다. 그는 "종로세무서 세정협의회 관계자로부터 제보를 받아 실제 운영되는 세정협의회 명단과 이들의 과거 고문료 지급 내역을 확보하고 있다"며 "국정감사 증인대에서 그간 취재를 통해 확보한 고문계약 내용 일부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견씨는 지난 5월18일 제보를 받고 종로세무서 옥상에 마련된 카페를 찾았다가 그 자리에 김모 서장, 나모 과장 등으로부터 감금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의 휴대폰에 찍혔던 관련 영상을 두고 몸싸움도 빚어졌다. 이 자리에는 세정협의회 소속 김모 보령약품 대표와 보령제약 관계자도 있었다고 견씨는 증언했다. 그는 경찰의 도움을 받고서야 해당 장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고, 김모 서장 등을 폭행 및 감금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으나 최종 무혐의 처리됐다. 김모 서장은 현재 남대문세무서에서 대기 발령 중으로, <뉴스토마토>는 그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국세청은 전국에 7개의 지방국세청과 그 지방청 산하에 130개의 일선 세무서를 두고 있다. 이들 세무서는 대민 창구로 세정협의회를 운영 중이다. 국세청이 펴낸 '국세청 50년사'를 보면, 세정협의회 역사는 1971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긴 역사를 자랑하듯 전관예우, 청탁과 봐주기 등의 부정도 관행이란 이름으로 세정협의회에 뿌리 박혔다. 국세청이 김 의원실에 보낸 답변서를 보면 "세정협의회는 지역여론 수렴, 세정홍보 협조 등을 위해 세무서에 운영하는 비공식 민관 협의체"이며 "세무서와 납세자 간의 소통창구로 운영되고 있다"고 기재돼 있다.
이에 대해 장신기 국세청 대변인은 "제도 운영 과정에서 약간의 잡음은 있다. 세정협의회는 지역 납세자 의견을 모으는 창구인데, 그게 무슨 벼슬인지 아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문제는 세정협의회 말고도 어디 위원회든 다 있다"면서도 "현재 세정협의회에서 큰 문제나 잡음은 없는 걸로 안다"고 해명했다.
김기성·최병호 기자 kisung01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