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발목…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난항

공정위, 독점 노선 슬롯 분배 등 조건부 승인 가능성↑
대한항공 "슬롯 점유율 낮아…독과점 요인 판단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입력 : 2021-10-17 오후 12:00:00
[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합병이 경쟁당국의 '독과점' 판단에 발목이 잡혔다. 통합 항공사의 노선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편익 저해 우려가 있어 일부 슬롯을 외항사에 넘기는 등의 분배를 조건으로 기업결합 심사가 승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완전경쟁시장인 항공운수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경쟁 제한성 우려는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를 올해 중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대한항공 항공기와 아시아나항공 항공기가 착륙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공정위는 양사의 기업결합에 따른 '경쟁 제한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양사 인수합병(M&A)가 경쟁 제한성이 있어 일정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심사관의 의견”이라며 “국토교통부의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언급하며 조건부 승인 가능성을 피력한 바 있다. 그간 공정위는 양사 합병시 독점 체제로 전환되면 가격 결정권이 대한항공으로 넘어가 항공운임 인상, 마일리지 혜택 감소 등 통합에 따른 경쟁 제한성 여부를 깐깐하게 살펴왔다. 
 
이에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에 조건부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건은 대한항공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운수권과 슬롯권을 다른 항공사에게 배분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운수권이란 타국과 항공회담을 통해 항공기 운항 횟수를 정해 그 안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슬롯이란 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이다. 
 
공정위 기업결합과 관계자는 "당장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외국의 경우도 항공사 기업결합 시 경쟁 제한성이 있으면 타 항공사에 슬롯을 배분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항공산업 생태계를 복원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목적”이라며 “만약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는 조건부 승인이 될 경우 외항사 배만 불리게 돼 합병 취지를 퇴색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간 대한항공은 항공운임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운 항공 시장에서의 일방적 운임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슬롯 점유율로 독과점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앞서 우기홍 사장은 지난 3월 "인천공항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슬롯 점유율은 약 40% 미만 수준"이라며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타 글로벌 항공사들의 허브공항 슬롯 점유율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델타항공은 애틀란타공항에서 79%, 아메리칸항공은 댈러스공항에서 85%의 슬롯을 점유하고 있다. 루프트한자의 프랑크푸르트공항 슬롯 점유율은 67%다. 반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뿐 아니라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과 모두 합쳐도 인천공항 점유율이 50%에 미치지 않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독과점이라는 것을 단순히 노선 점유율로 판단할 게 아니라 항공 자유화와 경유 노선에 따른 고객 편의 등의 요인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공정위의 추가 자료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기업결합 심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결합심사는 공정위를 비롯해 필수 신고국 총 9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한항공은 현재 터키와 대만, 태국 등 3개국의 승인을 얻어냈다. 공정위가 연내 승인을 내도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베트남 등 5개국 승인은 '감감무소식'인 상태다. 연내 국내 기업결합심사가 마무리 돼도 해외 경쟁 당국의 판단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내년께로 미뤄질 전망이다. 
 
이에 국내 심사가 지연되면서 해외 경쟁 당국의 판단도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달 “항공산업은 국내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 간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서 “공정위가 앞장서서 해외 경쟁 당국을 설득하면 좋은데 오히려 다른 국가의 조치를 보고 판단하려는 모습이라 섭섭하고 유감스럽다”고 작심 발언을 내놨다. 시장과 산업적 측면에서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결단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공정위가 합리적인 결론을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슬롯 점유율 측면에서도 독점이 아닌 데다가 장거리 노선에서 독점 이윤을 얻는다는 게 구조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항공 자유화가 된 미국 같은 경우는 무제한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보통은 항공협정에 따라 국제선에서는 당사국과의 운수권을 교환한다. 이같은 항공운송업 네트워크 특성을 이해하면 독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통합사가 탄생해도 국제 무대에 나가는 순간 치열하게 경쟁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독과점 논의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된다. 공정위가 조속히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항사에 슬롯이 넘어가면 국내 항공 산업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단 우려도 있다. 제한된 운수권과 슬롯을 저비용항공사(LCC)가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장거리 노선의 경우 대형기만 운항이 가능하지만 국내 LCC는 중소형 기종만 보유하고 있다. 이에 외항사들이 이들 노선을 취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유화 노선의 경우 어느 누구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데 통합항공사의 운수권을 제한하면 외국항공사의 운항만 늘어나게 된다"면서 "비자유화 노선의 경우도 결국 외국 항공사들이 그 동안 운항하지 않았던 운수권을 토대로 새롭게 운항을 시작해 외항사 점유율만 높이는 결과만 초래해 우리 항공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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