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이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와 관련해 이중기준 철회를 재차 주장하며 한미 당국의 반응을 시험하고 있지만 남북, 북미 대화 흐름을 방해하는 정도의 행보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북한이 대화를 염두에 두고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간 종전선언 논의는 속도를 내고 있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오는 22일 방한하는 가운데 진전된 안을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2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 형식을 빌려 "우리의 이번 시험발사가 미국을 의식하거나 겨냥한 것이 아니고 순수 국가방위를 위해 이미 전부터 계획된 사업"이라며 "미국은 이에 대해 근심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특히 "미국이 우리의 합법적인 자위권 행사를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 위반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오도하며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하는 등 심히 자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미국이 주권국가의 고유하고 정당한 자위권 행사에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하여 매우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정상적이며 합법적인 주권 행사를 걸고 들지 않는다면 조선반도(한반도)에서 긴장이 유발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동일한 무기체계를 우리가 개발, 시험한다고 이를 비난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기준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만을 더해줄 뿐"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1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와 관련해 "주권 행사를 막지 않는다면 한반도에 긴장이 유발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된 북한 신형 SLBM 발사 장면이다. 사진/뉴시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주장은 주권 행사라는 이유로 일련의 미사일 발사를 정당화함과 동시에, 다만 이로 인한 긴장 조성과 상황 악화는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북한 외무성 대변인과 기자들의 질의 응답이었다는 측면과 (북한이) 미국의 위협 발언에 대해 우려라는 표현을 했다는 점 등을 봤을 때 나름대로 대화 접촉을 염두에 둔 북한의 수위 조절 의도가 담겨있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또 "현 단계에서 보면 한미 간에 나름대로 종전선언 내용을 둘러싸고 문안 조정을 하고 있고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규탄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며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력 강화가 전쟁 억제력에 방점이 있다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력 강화가 평화, 안정의 담보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것을 다 감안했을 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질의응답은 향후 행동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수위조절을 하면서 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의 반발이 지금 판 자체를 뒤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렇게 보면 전체적인 흐름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중심으로 한 대화의 방향을 역전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외교당국은 북한의 잇단 이중기준 철회 시험에도 여전히 대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면서도 외교적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0일(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북한의 신형 SLBM 시험발사 문제를 논의했지만 북한에 대한 기존 제재를 유지하는데 그쳤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8일(현지시간)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담을 마친 후 워싱턴 미국 국무부 앞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당국의 종전선언 논의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은 종전선언 문안이 향후 미칠 파장에 대해 상당수의 법률가를 투입해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22일 한국을 방문하는 성 김 대표가 추가로 종전선언과 관련한 미국 측의 입장을 들고 올 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당장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지만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양 교수는 "종전선언과 관련해서 실무 수준에서 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고, 한미 모두 남북, 북미 대화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성 김 대표의 방한"이라며 "아마 11월 초부터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대화 담화를 시작해서 남북 간 소통,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지 않을까 전망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성 김 대표의 방한도 현재 흐름 속에서 국면 자체를 대화 쪽으로 바꿔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으로 봐야 한다"며 "북측을 향해서 '한미가 종전선언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는 어떤 신호를 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종전선언 문제는 한미 당국의 논의로 끝나지 않고 중국, 러시아와도 협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미 간 협의가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음 주에 모스크바에 가서 한국과 러시아 간의 실질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며 종전선언 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