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7박9일 간의 유럽 순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추진에 이어 남북 산림 협력까지 제안하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한편 북한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전방위 외교전을 펼쳤다. 임기를 6개월여 남기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사실상 '올인', 종전선언 논의의 불씨 살리기에 온 힘을 다했다.
문 대통령은 이탈리아와 영국, 헝가리로 이어지는 유럽 3개국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5일 귀국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렸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일정의 절반이 지났을 뿐인데, 발에서 피가 났다"며 문 대통령 유럽 순방의 분주한 분위기를 전할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교황 방북 의지 재확인 "초청장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직후 가는 곳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교황과의 만남은 한반도 평화 외교전의 백미였다. 문 대통령은 순방 첫 일정으로 교황을 만나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방북을 제안했고,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도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을 돕기 위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했다. 2018년 10월 문 대통령과 처음 만났을 때 방북 의사를 내비쳤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에 다시 한 번 방북 의지를 표명하면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관건은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봉쇄 조치다.
이를 뚫고 교황 방북이 성사될 경우 전 세계인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 평화를 염원하면서 종전선언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 머물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 재가동에도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교황 예방을 문 대통령과 함께 했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4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이 결단하고 결심하면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높은 기대감을 보였다.
로마에 온 DMZ 철조망 십자가 "평화 염원 담겨"
문 대통령은 교황의 면담 이후 비무장지대(DMZ)에서 사용됐던 폐철조망을 녹여 만든 '평화의 십자가' 전시회에 참석했다. 한반도 종전과 평화 정착 필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높이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 십자가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이산가족의 염원,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염원을 담았다"며 한반도 평화 진전을 위한 절박함을 전 세계에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에서 열린 G20 공식 환영식에 도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G20 정상회의, 한반도 평화 외교의 장으로…각국 정상 만나 지지 당부
문 대통령은 30일 열린 G20 정상회의 무대도 한반도 평화 외교의 장으로 활용했다. 각국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지속적인 지지를 당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릴레이 회담에서 지지 의사를 이끌어냈다. 문 대통령은 공식 환영식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교황의 방북 의사를 전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반가운 소식"이라며 "(한반도 문제 해결에)진전을 보고 있다"고 환영했다.
COP26 정상회의에선 남북 산림 협력 제안 "한반도 온실가스 감축"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진전에 대한 의지는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진행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에서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이라며 남북한 산림 협력을 제안했다. 대북 제재에 덜 민감한 산림 협력을 대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축적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당장 북한 노동신문이 이날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의 방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남북 산림 협력 제안에 반응을 보였다.
정의용·이인영 장관도 종전선언 외교전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국제기구 수장, 주요국 장관들과 만나 '종전선언' 띄우기에 나서며 힘을 보탰다. 정 장관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문 대통령의 교황 면담 일정을 수행한 이 장관도 세계식량계획(WFP)과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적십자연맹(IFRC), 교황청 관계자들과 만나며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고 대북 인도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 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G20·COP26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기후위기 대응 중재
문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관심을 가졌던 또 다른 부분은 높은 수치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기후변화 대응에서 여러 나라들 간의 중재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유엔에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기존 수치와 동일하게 제출해 국제사회 일각의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해 다른 나라들의 주목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또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견을 좁히는 역할을 하겠다고 자임했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나라로서 개도국과 선진국이 균형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기여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나라들을 견인하겠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G20이 더 많이 헌신하고 개도국 처지를 고려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19 백신 공급에서도 선도적 역할 자임
문 대통령의 이른바 '선진국 역할론'은 코로나19 백신 공급 구상 방안에서도 두드러졌다. 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글로벌 백신 제조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과 함께 백신이 부족한 국가를 직접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언급했다. 자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백신 접종률을 높여야 전 세계의 일상 회복이 가능해진다는 판단에서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