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종전선언 관련해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중 갈등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종전선언을 임기 마지막 카드로 내건 문재인정부로서는 악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보이콧에 나설 경우, 남북미 3자 선언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 모여 종전을 선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 경우 북한에 입김이 큰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21일 정치권과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회담하면서 베이징 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 검토 여부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사실임을 확인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우드스톡의 페미게와셋강 NH175 철교에서 인프라법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따라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미중 정상이 모여 종전을 선언하는 큰 그림을 기대했던 문재인정부의 구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당초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전선언을 비핵화 대화의 입구로 활용해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이었다. 반면 6·25 전쟁 정전에 서명했인 미국이 불참할 경우 베이징 무대에서의 종전선언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또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이 현실화 될 경우 중국의 반발이 고조되면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 간 협력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 입장에서도 보이콧 현실화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불가피해졌다. 다만, 아직은 바이든 대통령의 베이징 올림픽 참석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바이든 정부가 어떤 입장을 정한 상태는 아니다"라며 "베이징 올림픽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정부가 계속 가져왔던 입장인데 그런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미가 종전선언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룬 뒤 북한을 설득하는 방식의 기존 방향에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변인은 "한미가 계속 이 문제(종전선언)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고, 현재 논의 수준이나 속도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한미 외교당국에서 나오고 있다"며 "한미 간의 협의가 마무리되면 북측과 협의하는 과정이 다음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 모여 종전을 선언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한미가 종전선언에 합의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할 때 가능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남북미중) 4개국 정상이 모여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가장 모양새가 좋다"면서도 "올림픽 기간에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개최되면 분쟁 국가들은 휴전에 들어가기 때문에 분쟁 지역에서 휴전 기간을 감안해 종전선언을 추진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베이징 올림픽 참석에 연연치 말고, 기존 방향대로 미국과 북한 설득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보여야 비핵화에 있어서도 진전이 가능하다"며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수단에 종전선언이 꼭 필요하게끔 바이든 대통령과 북한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베이징 올림픽과 종전선언을 결부시키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며 "남북 사이에 종전선언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여전히 '적대시정책과 이중기준 철회'라는 대화 선결조건을 제시하며 한미의 조건 없는 대화 재개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은 21일 외무성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적대 세력들의 반공화국 인권결의를 대 조선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의 산물로, 우리 공화국 영상에 먹칠하려는 엄중한 주권 침해 행위로 강력 규탄한다"며 유엔 산하 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 통과에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끝내고 나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