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세계적으로 치솟는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이 비축유 방출에 나섰다. 한국의 비축유 방출은 리비아 사태가 발발한 2011년 이후 10년 만이다.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가를 잡기 위해 전략비축유(SPR) 5000만 배럴 방출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다른 주요 석유 소비국과 조율해 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첫 사례다.
백악관은 5000만 배럴 가운데 3200만 배럴은 에너지부가 앞으로 수개월 간 방출하고 향후 수년 동안 비축유를 다시 채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1800만 배럴은 앞서 의회가 판매를 승인한 석유의 일부가 방출된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 조치는 노동자 가족의 비용을 낮추고 경제 회복을 지속하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미국 전역의 일반 무연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3.409달러로 7년 만의 최고치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인 7억2700만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에서 90일 동안 소비할 수 있는 규모다.
미국의 공조 요청에 인도 등이 동참을 선언했다. 인도 석유·천연가스부(이하 석유부)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도는 전략 비축유 중 원유 500만 배럴을 방출하는 데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석유부는 “이번 방출 조치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국제 에너지 소비국과 협의로 동시에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는 현재 동부와 서부 등 세 저유 시설에 국내 수요의 약 9일분에 해당하는 3800만 배럴의 원유를 비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도 비축한 석유를 방출하기로 방침을 굳혔다고 NHK가 이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우선 수일분의 비축유를 방출하고 이후 추가 방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도 비축유 방출에 동참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23일 “최근 급격하게 상승한 국제 유가에 대한 국제 공조 필요성, 한·미 동맹의 중요성 및 주요 국가들의 참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국의 비축유 방출 제안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축유 방출 규모·시기·방식 등 구체적 사항은 향후 미국 등 우방국과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한국은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비축유의 약 4% 수준인 346만 배럴을 방출했다.
정부는 비축유 방출에도 IEA 국제기준에 따라 100일 이상 지속 가능한 물량을 보유할 수 있어 비상시 석유 수급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비축유를 관리하는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8월 말 기준, 전국 9개 지역에 비축된 석유 물량은 9700만 배럴(공동비축물량 제외)에 달한다. 이는 추가 석유 수입 없이 국내에서만 100일 넘게 사용 가능한 물량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방출계획이 세워지면 30일 이내에 비축유가 방출되는데, 미국 요청 시 국가 간 협의로 결정할 것으로 본다”며 “정책대여분 비축유는 보통 1년 내 채워진다”고 전했다.
주요 산유국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가 급감하자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되면서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생산량을 확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유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증산을 압박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12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