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중증장애인의 전동휠체어 비용 지급을 거부한 지자체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이 3일 나왔다.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조작할 수 없어도 보조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원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위수현·김송)는 이날 중증장애인 A씨가 강서구청을 상대로 낸 보조기기 급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법령이 요구하는 의사의 소견서와 처방전을 제출한 바 있어, 그 지적 능력이나 조종 능력 면에서 전동휠체어를 스스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뇌병변 및 지적장애 인에 해당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스스로 조작' 요건은 위법
뇌병변·지체장애를 가진 A씨는 지난해 12월 강서구에 전동휠체어 비용 지원을 신청했다. 강서구는 "지적장애 등록이 돼 있는 경우 전동휠체어를 스스로 작동하는 데 문제 되지 않는다는 담당 의사 소견이 있는 경우에 지급이 가능하다"며 지원을 거부했다. A씨 혼자 안전하게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아 지원할 수 없다는 의미다.
A씨는 해당 안내가 구속력 있는 법규명령이 아니고 관련 소견서 추가 제출이 필요하다는 처분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전동 휠체어를 보조금 없이 구입할 경우 인지기능 검사를 요구받지 않고 평소 도와주는 활동지원사를 통해 전동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사회계약은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만 체결된 것이 아니"라며 "장애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의 사랑하는 자녀, 가족, 이웃이 될 수 있다' 는 상호의존적 공동체라는 생각에 그 가치 기반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재판부는 현행 장애인 보조기기법 시행규칙이 4조1항을 문제 삼았다. 지자체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고시에 따라 보조기기 교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고시가 없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보건부 장관은 '장애인복지사업 안내 2' 및 '2021 보조기기 사례관리사업 운영지침'에 의거해 보조기기 교부 신청에 따른 결정이 이뤄진다고 답변했다"며 "이는 명백하게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아무리 내부적 지침이 대외적으로 공개된다 해도 법령 위반의 하자가 치유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분에 관한 고시 제정 및 시행 등에 관한 행정입법부작위가 존재한다"며 "이런 부작위는 법령에 위반됨이 명백하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이동권은 공동체 전체 삶의 질 문제"
또 장애인보조기기법상 전동휠체어는 자가조종용과 보조인 조종용으로 나뉘는데, 보건복지부 고시가 스스로 조종하는 전동휠체어만 급여 대상이라는 전제로 관련 검사 결과를 요구하고 있어 자가조종 능력이 없는 뇌병변장애인을 차별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전동휠체어의 조종간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인 '이동'에 대한 욕구가 더 적을 리 없다"며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 보조기기를 청구할 권리는 노령연금 등 사회연금이나 금전적 형태로 생활을 보조하는 생활보장적 급여와는 그 결을 달리하는 것으로, 인간 존엄 유지의 최소한의 중핵을 이루는 근본적 권리"라고 말했다.
이어 "전동휠체어조차 스스로 조작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 어디론가 이동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 텐데, 이 부분을 사실상 짊어지고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그 가족"이라며 "전동휠체어 관련 급여 제공은 단순히 장애인 한 사람의 존엄과 가치 및 그 개인의 삶의 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가족공동체 전체의 존엄성 유지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질 유지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과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보조기기법 등 장애인 관련 법령, 장애인과 경제적 최약자를 보호하려는 의료급여법 관련 규정이 과연 이런 '가족 전체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방치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는 것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장애인 단체는 이번 판결을 반기고 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해온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의 윤두선 대표는 "아무리 장애가 심해도 나가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고 자유에 대한 갈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이와 같은 장애를 이유로 전동휠체어 등 지원을 거부하는 현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 대리인인 이정훈 법무법인 에셀 변호사는 "장애인 보조기기가 단순한 운행 도구가 아닌 기본권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재판부가 깊이 이해했다"며 "기존 전동휠체어 급여의 전제가 되는 본인의 운행 가능 여부가 위헌·무효라는 것을 확인한 매우 획기적이고 중요한 판결"이라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