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강력범죄가 일어나는 과정의 일면은 동물학대가 사람 대상 범죄로 이어지는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말 못하는 동물 등 약자에 대한 괴롭힘이 강력범죄로 발전할 수 있어 꾸준한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권일용 프로파일러와 면담 도중 "개를 많이 죽이다 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됐고, 살인 욕구를 자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동물에서 사람으로 대상 바뀌어
동물학대가 사람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는 미국의 제프리 다머다. 어린 시절 친구 없이 외딴집에 살며 동물 해부에 빠져들었던 그는 연쇄살인과 해부를 이어가다 1992년 일급살인으로 수감됐고 다른 복역자에게 살해됐다.
지난 2003년~2004년 노인과 여성 등 21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유영철은 가난과 가정폭력 속에 유년시절을 보냈고 14차례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이후 월간지에 나온 연쇄살인범 정두영 기사를 보고 연쇄살인을 계획했는데, 첫 범행 직전 개를 상대로 살인을 연습했다.
동물학대의 직접적인 예방책은 학대 가해자와 피해 동물의 분리다. 현행법상 지자체가 반려동물을 가해자로부터 격리할 수 있지만 보호비를 낸 가해자가 반환을 요구할 때 거부할 수 없어 사문화됐다.
해외에선 동물학대 가해자와 피해 동물 격리, 사육금지 제도가 마련돼 있다. 독일 법원은 유죄 확정 판결 시 1년 이상 5년 이하 또는 장기적으로 동물 사육 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판결이나 약식명령으로 법적 효력이 생긴다. 미국 44개 주는 학대나 방치 피고인이 유죄 판결 받기 전 피해 동물을 압수하거나 몰수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동물 학대 예방을 위한 법 개정이 진행중이다. 국회에 계류중인 동물복지법 전부개정안은 징역형이나 벌금형 등 유죄 선고를 할 때 200시간 범위로 수강명령이나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병과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동물학대로 유죄가 확정되면 5년 범위로 동물 사육 금지 처분이 병과되고, 확정 전이라도 가처분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진/뉴시스
수사 강화 과제...개헌 의견도
동물단체에서는 학대범 처벌만큼이나 수사단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은 "동물학대 수사가 아직 고도화되지 않았는데 학대범이 잘 아는 맹점"이라며 "(사람과 달리 범죄에 대한) 감시가 철저하지 않고 사건접수 할 때 동물보호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찰도 있어서 '신고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전화를 끊는 경우도 있다"고 혀를 찼다.
이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수사에 들어가도 주인이 사체를 버리는 등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헌법에 '동물보호' 조항을 넣어 제도 전반에 거스를 수 없는 영향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헌법에서 그런 내용이 없을 때 다른 가치와 상충해 동물이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예를 들어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15조)가 있는데, 개 식용업자가 개 식용 금지는 위헌이라고 주장할 때 동물보호 조항이 없다면(이라는 물음이) 헌법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법 개정이 사회적 공분의 후속 대책으로 진행돼온 점도 헌법 개정 주장의 근거다. 지난 2018년 정부가 반려견 특성과 관계 없이 체고에 따른 입마개 의무착용 도입을 시도한 적이 있어, 동물 보호 역행을 막기 위해 헌법의 동물 보호 명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1500만 반려인연대' 등 동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2월1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동물공약 이행 및 개, 고양이 식용문화 반대와 학대 금지 등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