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정부와 업계, 전문가 1년 가까이 협의에 나섰지만, 결국 '돈'과 관련된 기준지급률이나 적용 시기, 콘텐츠 대가 지급 재원 조달 범위 등 가장 민감한 부분은 결론 내지 못했다. 선계약 후공급 원칙 명시, 채널 사용 계약 종료 등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자 각각 양보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갈등을 1년만에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 합의는 이뤘지만 사업자군별로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상황이다.
지난 11월29일 열린 방송채널 대가산정 개선협의회 운영 결과안 공개 토론회. 사진/배한님 기자
같은 프로그램제공사업자(PP)에서도 CJ ENM과 같은 거대 MPP와 중소 PP의 입장이 다르고, 중소 PP 중에서도 비즈니스모델(BM)에 따라 목소리가 나뉜다. 최근 콘텐츠 제작 역량이 늘면서 크게 성장한 CJ ENM은 콘텐츠 제값받기에 집중한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가 공격적으로 투자해 오는 상황에서 국내 사업자도 콘텐츠 제작비를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MPP는 선계약 후공급 원칙 합의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프로그램 대가가 너무 적다고 주장한다. 서장원 CJ ENM 전략지원실장은 "프로그램 사용료로 회수되는 제작비는 3분의1밖에 안 된다"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국내 콘텐츠 사업을 유망하지 않다고 보는 절대적인 부분이다"고 꼬집었다. 서 실장은 "중소PP나 중소SO의 어려움이 있지만, 보완책을 잘 만들면 된다"며 "선계약 후공급과 투자에 걸맞은 보상, 두 가지 원칙은 어려워도 상의하면서 지켜나가야 한다"고 했다.
반면 중소PP들은 MPP에게 가는 대가가 늘어날수록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줄어든다고 호소한다. 유료 방송 시장 매출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 속 지상파 CPS와 종편, MPP만 수신료를 올려받는 과정에서 중소PP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소PP에서 주로 제공하는 바둑·낚시·골프 등은 채널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어 꼭 필요하기에 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승현 한국PP협회장은 "선계약 후공급 원칙에 반문은 없지만 중소PP 보호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며 "거대 사업자가 가져가는 수신료가 얼마나 공평하게 배분되는지 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줄기차게 중소PP 수신료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바이다"고 강조했다.
중소PP 내부에서도 이견은 있다. 광고와 프로그램 사용료 등 순수 방송으로만 매출을 내는 곳과 VOD 등 부가 수입이 있는 곳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청률 지표나 채널 다양성 평가 등 채널 평가에 반영할 항목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IPTV나 OTT에 VOD 형태 또는 구독형 SVOD 형태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어 추가 수입이 있는 곳은 시청률 보완 지표에 채널 다양성을 고려하는 방안에 다소 회의적이다. 반대로 소수 마니아나 수요층을 위해 방송 매출만으로 운영되는 중소PP의 경우 채널 다양성이 시청률 지표 보완으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드라마나 중국 드라마 등을 수입해 VOD 매출까지 가져오는 곳들과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제작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곳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완전히 달라졌다"며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플랫폼과 종편은 채널 대가 산정 가이드라인에 지상파를 반드시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편은 지상파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기 어렵다고 버티고 있고, IPTV는 지상파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기준지급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IPTV 측에서 대놓고 지상파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기준지급률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며 "지금도 지상파 CPS 비중이 가장 큰데, 대가 논의에서 지상파를 뺀다면 지상파 부담분은 그대로 남은 채 PP 몫을 추가로 더 떼줘야 하기 때문에 플랫폼은 지상파가 참여하지 않으면 2단계 가이드라인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